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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I 윤리 매뉴얼 2.1

이지나 칼럼

‘부분틀니를 사용하던 50세의 여자 환자가 이제는 더 이상 틀니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며 임플란트로 바꿔달라고 치과에 내원했다. 임상검사를 마친 치과원장은, 해당 “환자의 임플란트는 난이도가 높은 시술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는데 본인은 아직 임상경험이 부족하다고” 설명하고, 구강외과의사를 추천해 주었다.


구강외과의사는 환자를 검진하고 필요한 검사를 하고 난 후, 임플란트 시술을 하기로 했다. 잔존치 7개를 발치하다 보니 골 흡수가 심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부위가 있어 골이식을 권했다. 그러나 환자는 “골이식을 안하면 임플란트가 불가능한가? 가급적이면 안하고 싶다”고 했고, 외과의사도 환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골이식 없이 12개의 임플란트를 식립했다. 이제 환자는 외과의사가 추천한 보철전문의에게 임플란트 크라운을 완성하러 갔다.


보철전문의가 검진해 보니 두개의 임플란트가 잘못 심겨졌다고 판단되나, 환자는 구강기능을 빨리 회복하기를 원하므로 보철의사는 임플란트에 크라운을 씌워 치료를 마쳤다. 그런데 환자는 새 보철물이 발음이 새어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보철전문의를 찾아갔고, 많은 비용과 시간을 소진하고도 결과는 개선되지 않았다. 환자는 초기에 진료를 받았던 구강외과의사와 보철전문의에게 찾아가 불만을 토로하였지만 아무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위의 예시는 개원의에게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인데, 이 일련의 과정에는 여러 의료윤리적 딜레마가 포함되어 있다. 환자의 자율적인 의사결정권(autonomy)과 진료를 하는 과정 중에 치과의사의 선행(do good) 및 악행금지(do no harm)의 의무가 충돌하고 있다. 환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오히려 해를 가하게 된 것은 아닐까? 환자가 골이식을 안하겠다고 했을 때 치료를 멈추었어야 했나? 임플란트의 위치가 좋지 않다고 판단한 최초의 보철의사는 크라운 제작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환자가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필요한 요소로 informed consent라는 양식이 있다. 이것을 환자의 사인을 받아두는 요식행위로서의 ‘consent form(동의서)’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중요한 ‘informed(충분한 정보에 근거한)’라는 부분을 간과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환자는 치료를 동의하거나 거절할 권리를 가지는데, 이 권리는 환자가 진료를 받을 ‘긍정적’ 권리, 혹은 거부할 ‘부정적’ 권리 모두 해당된다. 환자가 부정적 권리를 행사하여 치료를 거절하면 치과의사의 치료할 의무는 없어진다. 그런데 환자가 부정적 권리를 행사한 경우에도 본인의 치과적 정보에 대한 환자의 알 권리는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다. 이 정보 자체가 환자에게는 의료혜택이 되며, 치과의사에게는 정보제공의 의무가 된다. 


물론 대부분의 환자들은 두렵거나 걱정이 앞서 본인의 정황에 대해 자세하게 질문하기를 꺼린다. 메디컬 치료의 경우는 그나마 진료 도중에도 환자가 궁금한 점들을 질문할 수도 있다. 치과치료는 구강에 시술을 해야 하는 특성상, 일단 진료가 시작되면 입안에 들어있는 장애물들을 넘어 이야기 나누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치과의사는 치료 시작 전에 진단, 여러 치료 방법, 각각의 방법에 따르는 예후, 생길 수 있는 부작용과 위험성들, 비용과 그 외 부담들에 대해 구두로 설명하고 동의서로도 작성해야 한다. 치료 도중에라도 환자가 의문이나 의사표시를 원한다고 느끼면, 치료를 일단 중단하고 대화를 나누어야겠다.


치과의료 제공자인 치과의사는 일반 소비 제공자와 다른 점이 있다. 환자의 의사결정권은 존중하고 환자 스스로에게 이로운 결정을 내리도록 상담하고 권고하여야 하지만, 환자에게 모든 치과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비 전문가인 환자가 다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일반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와 언어로 바꾸어 전달해야 한다. 때로는 너무 많은 정보가 환자가 불안으로 몰아넣거나 절망하게 만들 수도 있으므로, 내용을 전달하는 억양이나 강조점을 신경써야 한다. 반면에, 환자가 해로운 결정을 내리려고 할 때는 강력하게 경고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필요한 경우에는 나보다 더 전문적 의술을 가진 의사에게 환자를 보내어 손해를 보기도 한다.


환자의 ‘알 권리’ 못지않게 중요한 권리로 ‘알고 싶지 않을 권리’가 있다. 자세한 설명이 더 겁나니 듣고 싶지 않다고 환자가 말한다면 그 역시 존중해야 한다. 환자는 informed consent를 받을 권리가 있으나, informed consent를 받을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환자가 알기를 거절하면 의사의 ‘알려줄 의무’는 다한 것으로 보고 치료를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진료 내용이 복잡하고 위험성이 있는 경우, 치과의사는 본인의 심적 고민과 부담감을 환자에게 표시해야 하고, 환자가 계속해서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요건이 된다.


‘충분한 정보’란 어디까지 알려주라는 말인가? 과거에는 평균적인 치과의사 집단의 통념적 치료상식의 범위 내에서 ‘전문가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수준에서 제공해 주면 되었다. 그래서 의료인 위주이며 지나치게 방어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제는 ‘합리적인 환자의 기준’에 근거한 정보제공이 요구된다. 즉 의사가 ‘알려주고 싶은’ 내용보다 환자가 ‘듣고 싶은’ 정보에 무게를 두고, 동시에 환자에게 가장 유익한 방법을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위의 예시에 관여된 모든 치과의사들이 informed consent, 가치-중립적 (비지시적이고 객관적)일 수 없는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를 얻고자 노력 했다면 예시와는 다른 결과를 이루어내지 않았을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