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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908)
부 용 산
조부덕

생일날 엄마가 부른 차분하고도 낭낭한 부용산 유달리 가슴에 와닿는데… 우리치과는 광주에서 오래된 주택가 풍향동이라는 동네에 있다. 1971년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아버지가 집장사와 블록 공장을 하시면서 6년을 이근처에서 생활하던 어린시절 나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환자 분들을 아버님, 어머님으로 부르면서 항상 낯익은듯한 마음으로 그런데로 보람을 갖으며 일하고 있는 듯하다. 7남매 막둥이로 태어나 아버지는 환갑을 지나 내가 고등학교때 돌아가셨는데, 나는 노가다했던 아버지를 집짓는 곳에서 항상 다정하게 놀아주셨던 것들과 저녁이면 엄마의 부탁으로 선술집에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오면서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이야기와 노래로 창피함보다는 왠지 자랑스러운 느낌으로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노래도 잘하시고, 감정도 풍부하시고 아는 것도, 경험도 많으시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날마다 취해 계시는 아버지가 목청껏 노래를 부르시던 모습, 절반의 노래는 엄마가 아버지의 입을 틀어막던 기억, 나중에 알았지만 아버지는 해방전후와 한국 전쟁중 좌익활동의 회한을 끝내 떨치지 못하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이제 30년여년이 지나 나도 나이 중반의 사회인이 됐다. 얼마전 여든이 다 되가시는 엄마 생신 날, 온 가족이 오빠 집에 모여 축하하던 날 이었다. 나도 이제 으젓한 모습으로 터울 많은 오빠들 가족과 기쁨을 같이 하는 날이었다. 저녁 식사와 술로 분위기는 그지없이 좋았고, 만취한 큰 오빠의 피아노 반주로 이모님부터 평소의 노래 솜씨를 자랑하게 됐다. 나는 우리 가족 모두는 나이와 상관없이 어렸을때 가정교육으로 노래는 좋아하고 잘 부른다고 생각한다. 넷째 오빠의 선곡, 노래방 1번이었다. 가거라 삼팔선. 듣고도 그것을 취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다섯째 오빠 중학생 아들에게 할아버지가 맨날 부르던 노래라며 또 가거라 삼팔선, 실은 나도 맨날 그것 부르는데 말이다. 그런데 둘째오빠가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의 고향 친구분이 오빠에게 음반을 가져와서 “너의 아버지의 18번인 빨치산 노래가 세상에 나왔단다.”하셨단다. 그 곡은 부용산이었다. 목포에서 교직에 계신 큰 오빠가 요즘 목포에서 화제가 된 곡이라고 먼저 선창하셨다. 사실은 며칠전 학교 선배가 활동하는 순천의 동부사회연구소에서 여순사건 진혼음반으로 그 당시 회자하던 노래나, 창작곡을 실은 음반을 얼마전 네게 주었었다. 그 노래들중에 유달리 부용산이 가슴에 와닿았었는데, 아 아! 그 노래가 엄마가 항상 아버지의 입을 틀어막던 그 곡이었구나… 수첩에 가사를 적어두었던 나도 때를 맞이하야 한 곡조… 부르니 넷째 오빠가 눈물이 난다고 했다. 다섯째 오빠는 그래 많이 들어보던 그 “너는 가고 말았구나 ”란다. 그런데 돌아가며 그날 불러댔던 부용산 중 백미는 엄마가 부른 차분하고도 낭낭한 부용산이었다. 이제는 아무런 아버지 걱정없이 꺼리김없이 우리 형제들의 건강과 부만을 빌고있는 우리 엄마, 터울도 많고 커온 환경도 많이 달랐고, 한해에 몇번 보지 못하는 우리 형제들의 공통적인 정서, 나는 그 자리에서 “정체성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무척 가슴이 뛰었다. 나라는 것은 원래 없고 주위의 인연의 결과가 나와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느낌이었다. 독학으로 바이올린을 해서 한때 나주회관에서 연주를 했다던 삼촌은 6·25때 경찰서에서 많은 사람들과 총살을 당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보이는 경찰서 유리창틀이 내게 선히 보이고, 바이올린이 나의 숙명처럼 느껴졌던 것도, 어쩌면 인연이듯싶다. 이제는 한물 간듯한 좌우 이데올로기 이야기만 나와도 왠지 나의 숙제처럼 느껴지고 술취해 치과를 찾는 동네 아저씨들의 그 모습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 이 곳은 꼭 내가 있었어야 하는 자리인 듯 싶다. 조 부 덕 ·89년 전남치대 졸 ·현) 광주 조부덕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