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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재회

스펙트럼

소아치과 수련을 마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분당에 진료공간을 마련해서 아이들을 진료하기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난 1997년의 어느 날 정난기가 많은 얼굴의 귀여운 6살 남자아이가 엄마 손에 이끌리어 신환으로 찾아왔습니다. 처음 방문했는데도 여러 번 왔던 것처럼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병원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구경하기 바빴고 유닛에 올라와서도 씩씩하게 곧잘 협조해주어서 검진과 간단한 치료도 쉽게 진행되었었지요. 이후 어머님께서 정기검진도 꾸준하게 잘 데리고 와주셔서 지속적으로 검진과 관리를 했었고 아이는 많이 잘 따랐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 아이의 유치가 빠지고 앞니가 영구치로 교환되어 있었는데 그 나이의 남자아이들이 자주 그러는 것처럼 놀이터에서 놀다가 앞니를 다쳐 울면서 응급으로 치과에 왔었습니다. 상악 좌측 중절치가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1/3정도 부러져나갔고, 치수가 노출되기 직전이었습니다. 놀라서 우는 아이를 겨우 달래어서 레진으로 모양을 당일 만들어주었고, 맹구가 된 것 같은 모습에서 잠깐 사이에 다시 제 모양을 찾은 자기 이를 거울로 보며 그 아이는 활짝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활동적일 나이인지라 그 이후에도 정기적인 검진 내원 외에도 겨우 만들어 붙여준 그 치아가 다시 충격을 받아서 레진이 떨어져서 내원을 두어 번 했고, 그 때마다 신기하게도 떨어진 레진의 모양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레고 조립할 때에 쪽이 딱 맞아서 표면처리만 하고 다시 붙여줄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그 아이는 점점 자라서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보통 고등학생 때까지 관리해주고 대학생이 되면 성인진료 쪽으로 옮기도록 하는데 그 아이는 계속 나에게 검진을 받기를 원했고, 딱히 치료를 할 이상 상태도 생기지 않아서 다 큰 그 아이를 어린 아이들 북적이는 소아치과에서 정기검진 후 치석제거 해주면서 유지관리를 해주던 중 집이 멀리 이사가게 되었습니다. 오래전에 붙여준 앞니 레진이 아무래도 색이 조금 변해서 덜 심미적으로 보여 본인은 어떤지 물어보니 전혀 신경 안쓰이니 떨어질 때까지는 그냥 지내겠다고 쾌활하게 이야기해서 부드럽게 연마만 해주고 이사가기 전 마지막 진료를 마쳤습니다. 혹시라도 다시 이사를 오게 되면 찾아오겠다는 어머님과 아이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그 아이는 내 기억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도 아닌 무려 10여년이 지난 바로 며칠 전에, 오래 전 환자분이 전화를 주셔서 상황이 너무 급한데 내일 어떻게든 원장님께 진료를 받고 싶다고 사정한다고 알려왔습니다. 내용인 즉슨 옛날에 원장님께 치료를 받았던 앞니가 떨어졌는데 옛날에 원장님께서 그것을 붙여주셨었다고 꼭 원장님께 진료를 받고 싶다고 하였다구요. 이름을 듣는 순간 오래전의 그 개구쟁이 모습이 신기하게도 확 떠올랐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내일 당장 예약을 해주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그 아이가 오기 전에 마음이 꽤 설래였습니다. 얼마나 많이 크고 변했을까 하는 궁금한 마음으로 있는데 드디어 직원이 그 아이가 왔다고 알려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입구쪽으로 나가보았더니 이제는 아이가 아닌 어엿한 30대 초반의 청년이 어릴 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서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덥썩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면서 정말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진료실로 들어가서 붙였던 레진이 떨어진 치아를 정말 오랜만에 검진하고 방사선사진도 촬영해서 보았는데, 심하게 부러진지 20년이 넘었는데도 다행하게도 더 이상의 합병증이 생기지 않았고, 가져온 떨어진 레진조각을 맞추어보니 틈새가 없을 정도로 딱 맞았습니다. 예약 할 때에 너무 급하다고 했는데 무슨 일인지, 혹시 외국에 나가는지 물어보니 며칠 후가 결혼식이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30년 전에 결혼식을 불과 3일 남겨놓고 넘어져서 똑같이 앞니가 부려졌었던 나의 경우가 생각나서 빙긋이 웃음이 지어졌습니다.(그 당시에 마침 집 부근에 개원해 계시던 선배님의 도움으로 하루만에 이를 만들 수 있었고 치료비도 안받으셨습니다.) 간단하게 떨어진 레진을 표면처리하고 다시 붙이고 다듬어주고 나니 떨어지기 전보다 오히려 훨씬 더 깜쪽같이 좋아졌다고 거울을 보면서 거의 20년 전 그 때처럼 해맑게 웃는 그 아이(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또 떨어질 수 있으니 결혼식 전까지는 조심해서 지내라는 당부와 함께 치료비는 결혼선물로 생각하라고 하면서 받지않겠다고 하니 너무 놀라고 고마워하더군요. 함께 기념으로 사진 한 장 남기고 축복하면서 보냈습니다.

 

신혼집과 직장이 모두 분당에서 멀기 때문에 이후에는 또 언제 그 친구를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래된 소중한 인연을 잊지 않고 찾아와준 이런 반가운 손님이 앞으로 또 있기를 기대해보면서 지금 눈앞에서 나에게 진료를 받고 있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진심과 최선을 다하면서 지내는 매 순간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