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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와 치과는 왜 나누어져 있을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35)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의과대학과 치과대학이 구분되는 건 당연하게 여겨지다가도, 때로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왜 치과는 따로 나뉘어 있는 걸까요? 의과의 여러 영역처럼 치과도 의과에 속한 하나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나누어진 이유는 무엇이며, 이 구분이 지금 우리에게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익명


제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는 한창 드라마 <대장금> 여파로 한의사의 주가가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아니,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으나 지금은 의사 계열 직군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때라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치과대학도 한창 입시 배치표에서 높은 곳에 이름을 올리던 시점이었으니까요. 이후 시장의 상황에 따라 의·치·한은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음을 볼 때, 중요한 것은 ‘의료인’이라는 이름표보다는 시장의 상황일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장만으로는 의과대학과 치과대학의 분리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의과와 치과가 별도의 분야로 취급되는 이유도 분명하지 않지요.


우선, 의과와 치과가 이렇게 분리된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의과의 세부 전문 분야로 구강학(stomatology)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이런 국가에선 먼저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졸업한 다음에 구강학과 수련을 받아서 치과의사가 됩니다. 그렇다면, 치과 또는 치과대학이 분리된 이 형태가 특이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의·치 분리 모형이 훨씬 많이 퍼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요.


그렇다면, 의과와 치과가 분리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치과의사학(齒科醫史學)에선 그 출발점을 18세기 프랑스로 잡고 있습니다. 17세기, 외과의 샤를프랑수아 펠릭스(Charles-Francois Felix)가 “태앙왕” 루이 14세의 치루 수술에 성공하면서 외과의사의 지위는 이전 진정한 ‘의사’로 여겨진 내과의사와 같은 수준으로 격상합니다. 그 후배들은 자신을 전문화하기 시작합니다. 외과의가 택했던 전문 영역 중 하나가 구강이었고, 그렇게 자신을 ‘외과의-치과의사’라고 칭하기 시작했던 사람 중 피에르 포샤르(Pierre Fauchard)가 있었죠. 그는 『치과의사』라는 책을 써서, 외과의-치과의사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을 집대성합니다.


하지만 의사와 치과의사가 명확히 구분된 것은 아직 아니었지요. 둘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치과의사가 의사와는 별도의 전문가가 된 것은 19세기 미국에서였습니다. 최초의 치과대학이 설립된 곳이자, 직업적 역할과 업무를 직접 규정하기 위해 치과의사 협회가 조직된 곳이 바로 미국이었지요.


당시 신대륙엔 전통적인 교육기관이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교육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발달해 나갔습니다. 의사 교육은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지요. 한쪽은 이미 명성을 얻은 의사나 치과의사가 제자를 받아 교육하는 도제식 교육기관, 다른 한쪽은 유럽 유학파가 미국으로 돌아와 설립한 의과대학이었습니다. 둘 사이에는 경쟁도 있었지만, 신대륙에서 새로운 의학교육의 방식을 형성해 가는 데 양쪽 다 고유의 역할을 합니다. 치과대학 또한, 그런 양쪽의 영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지역에서 유명한 치과의사로 이름을 날린 호러스 하이든(Horace H. Hayden)과, 의사로 구강 영역에 관심을 가져 치과 진료를 하던 채핀 해리스(Chapin A. Harris) 두 명의 치과의사가 1840년, 세계 최초의 치과대학인 볼티모어 치의과대학(Baltimore College of Dental Surgery)을 설립했거든요.


이에 더하여 전문직의 요건으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직업 구성원이 스스로 자신의 역할과 업무를 규정하고 구분하기 위한 협회입니다. 나쁜 질의 아말감을 들고 미국을 찾아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크로커 형제(Crawcour Brothers)를 상대하기 위해 미국에서 진료하던 치과의사들이 뭉치고, 이들이 1839년 결정한 것이 미국 치과외과의 협회(American Society of Dental Surgeons)였습니다. 비록 이 협회는 오래 가지 못했지만, 현재의 치과의사 협회인 미국 치과의사 협회(American Dental Association)의 전신이 되지요.


치과가 별도의 전문직이 된 것은 이런 계기들을 통해서였습니다. 별도의 교육기관이 확립되고, 직업을 스스로 규율하는 조직이 구성되면서 치과의사는 의사와 구분되는 명확한 전문직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아있지요. 애초에 미국에선 왜 치과대학이, 치과의사 협회가 생겼던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미국의 광활한 토지 때문이었을 겁니다. 의사 직군의 위계가 자리 잡았던 유럽과 달리, 미국에선 의사와 치과의사를 대상으로 한 규제가 느슨했죠. 기술자들은 손쉽게 치과 영역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1825년 미국의 치과의사는 100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1840년이 되면 그 숫자는 엄청나게 증가해 1,200명이 됩니다. 아직 교육기관도 없었는데 어떻게 숫자가 열몇 배가 늘어났던 것은, 자신이 치과의사라고 이름 붙이면 치과의사가 되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돌팔이’ 치과의사들이 늘어나면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치과의사들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치과의사는 사기꾼이라는 평판이 퍼진 사회에서, 도제식으로 교육을 받았든, 유럽에서 배워 왔든 정식으로 치과 진료를 하는 치과의사는 진료하기가 어려워지죠. 그래서, 이들이 직접 자신들을 관리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우리는 배울만한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 의과와 치과 사이의 분리는 역사적 우연에서 탄생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의과와 치과 사이에 어떤 위계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의사가 치과의사를 얕잡아 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무지에 기인한 것일 뿐이죠. 둘, 치과 전문직의 성립은, 잘못된 진료를 하는 자들로부터 자신을 관리, 규제하려고 했던 움직임에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전문직 형성은 자생적이지 않았기에 외국의 발전을 그대로 따라갈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전문직이라는 구분이 유효하여지려면 우리는 자신을 다잡아야 할 겁니다. 나중에는 이런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사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전문가로, 사회가 필요한 기능을 전문 지식으로 제공하는 사회의 필수적인 직종으로 구분한다면, 우리는 지금 다시 자신을 어떻게 세워갈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