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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함께 나누며

시론

살면서 우리는 차마 경험하고 싶지 않는 일들을 무수히 많이 보고 겪게 된다. 운 좋게 피해갈 수도 있겠지만 맞닥뜨려야 하는 경우엔 슬기롭게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광우병소, 돼지독감, 조류독감으로 수만, 수십만, 수백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 할 때는 동물들도 생지옥이지만 현장에서 근무하는 담당자와 종사자들에게도 끔찍한 일이다. 그로 인한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분도 많다고 한다. 예전에는 살처분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지만 요즘엔 모두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흔히 있는 일이고 보면 동물을 희생시켜야만 인간이 산다고 하니 면죄부를 주는 잔혹함이다. 인간과 함께 살며 늘 친밀감을 유지하던 동물들조차 쥐, 파리, 모기와 같은 유해동물과 해충처럼 취급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또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교란시키는 까치, 멧돼지,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등을 퇴치하기 위해 살육을 하는 일들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로드-킬로 도로가에 희생된 동물들의 사체를 보고도 지나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지만 직접 수거해서 처리하는 분도 있기에 그냥 모르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누군가가 해야만 우리사회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렇듯 동물들의 생명을 거두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인데 사람사이에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통을 늘상 겪어야하는 분들이 있다. 안락사가 부분적으로 허용되지만 마지막 인공호흡기를 떼는 것과 관련되는 의료현장에 계시는 분, 응급실에서 마지막을 지켜보는 분, 중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하시는 분, 수족을 못 쓰거나 거동이 어려워 치료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기도하며 마음고생하시는 분들이 떠오른다. 주변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고통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은 내 일이 아니라며 입에 올리길 꺼려하거나 괜한 고민을 미리 한다며 애써 외면할지도 모른다. 가족 모두에게 짐이 된다며 치매아내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노부부의 불행을 보노라면 괜히 우울해지기도 하고 해결책이 미흡한 사회구조가 한탄스럽기만 하다.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호스피스병동의 환자들과 그들의 마지막을 도와주는 봉사자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이 싫어하거나 외면하는 일을 나의 일인 양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숙명처럼 생활하시는 숨은 봉사자들에게 고마움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오래전이지만 우리치과 환자 중에 근처에 있는 공단에서 근무하다가 불행한 사고로 고통을 겪었던 외국근로자 분이 있었다. 그 환자는 작업장에서 쇠꼬챙이가 왼쪽 눈을 관통해서 오른쪽으로 비강, 상악동과 상악골을 관통하여 안면부의 상당부분이 손상되었다. 그 당시에 환자는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이었으리라. 나조차도 너무나 끔찍해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도 그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남의 일이라며 넘길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끔찍하고 흉측한 모습이었기에 사실 두렵기도 했다. 의료인의 도리와 사명감으로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자위하지만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씻을 수 없다. 사고 후에 뒤따른 책임과 보상을 우리사회가 만족스럽게 해줬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고 몇 개 남지 않은 치아를 치료하기 위해 내원한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가슴에 미안함을 간직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예기치 않는 일들이 늘 일어난다. 화재현장에서의 인명구조와 수습하면서 겪는 처참한 광경, 요즘처럼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위급환자와 함께하는 의료진과 가족들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도 누군가는 해결해야만 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해서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참고 일하는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고통 받고 있는 분들을 위해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가진다. 텔레비젼 인터뷰에서 종종 ‘그 상황이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 이라며 겸손해하는 의인들을 보며 과연 내가 그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며 반문해보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는 남을 위해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을 묵묵히 하시는 분들이 참 많다. 그분들의 덕택으로 우리가 더 편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으며 자본주의 사회지만 돈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걸 느낀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위를 둘러보며 따뜻한 말 한 마디와 작은 정성을 건낸다면 그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다. 지금의 우리 모두가 코로나와 싸우는 이 어려운 시국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꿋꿋이 이겨내기 위해 서로서로 격려하며, 힘든 일을 공유하는 마음을 갖고, 작은 것부터 살펴보고 나누며 실천하며 살리라고 조용히 다짐해본다.

 


아픔을 함께 나누며

 

쇠꼬챙이가 눈을 관통하고 입천장을 뚫었다
우째 이런 일이...
고통과 설움의 눈물 삼키며
타국 만 리 열악한 작업현장
가족 생각하며 기계를 만지고 있었으리라

 

한 쪽 눈을 잃고
코를 잃고
윗턱 윗니를 잃고
얼굴을 잃고
말을 잃고
사람을 잃고
웃음을 잃고
삶의 의욕마저 잃었다
모두를 잃은 되돌릴 수 없는 현실
그저 남아있는 아랫니 몇 개

 

지워지지 않는 섬찟한 얼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희생자
일한만큼 보상받는 곳에서
따듯한 온정으로
함께 이루어 가길 간절히 빌어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