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가 없다’는 표현을 종종하게 된다. 어처구니는 주로 ‘없다’라는 말이 뒤에 붙어서 상상 밖이거나 한심해서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때 쓰는 표현이다. 어원을 살펴보면 맷돌은 아래 위가 둥근 돌로 만들어져 있지만 손잡이 부분만 나무로 되어 있는데 그 손잡이를 어처구니라고 한다. 즉 어처구니가 없으면 맷돌을 돌릴 수 없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더라도 어처구니가 없이는 곡물을 갈 수가 없으니 난처하거나 황당한 일이 생겼을 때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표현을 썼다고 전해진다. 궁궐의 추녀 끝에 액운을 막기 위해 잡상(雜像)의 조각물을 세웠는데 이 조각상을 ‘어처구니’라고도 한다. 이 조각상이 없으면 미완성 건축물이라 한다. 한편으로는 불이 났는데 처마 위를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는 것이다. 살면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데 뜻밖의 사건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보이스피싱의 경우도 절대 당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예외 없이 당하는 것을 보면 웃을 일도 아니다. 더 지능화된 스미싱의 경우 설마 하다가 클릭하는 순간 미끼에 걸려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게 된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순간 뭔가 씌었다고 한다. 아니 귀신에 홀렸다고 푸념한다. 전자결제
전국적으로 인구가 감소되어가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예전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와 표어가 온 사방에 나붙었었다. 그러다가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며 산아제한운동을 하기도 했고 남자들 정관수술 받으면 예비군 훈련도 면제해주던 웃지 못 할 시절이 있었다.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이 내려져있어 인구가 급속도로 늘었다. 어느 순간부터 인구감소로 돌아서더니 이젠 급격한 하향곡선에 나라의 존립마저 걱정하는 시대가 도래 할 줄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핵가족 시대의 흐름과 개인주의가 강한 요즘 젊은 세대들이 우리가 겪지 못 한 환경에 살고 있다. 신생아 출생률은 줄고 노령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사회적 부담이 가중되는 것 같아 미안함 마저 든다. 어려웠던 시대와 비교하면 지금 잘 사는 시대여서 다행이라면서도 돌아가는 일상생활이 기계인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바쁘고 살기가 팍팍하다 보니 낭만을 누릴 기회도 적다. 젊은 세대들이 각박한 세상에서 돈을 벌어 결혼하고 집장만 하느라 정신없이 살다보니 여유도 없는 너무 힘든 시대가 되었다. 아기 낳아 육아하기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한다. 국제화 시대에 다행인지 자연적인
막연한 공상이 현실이 되다. 시골에 살며 밤하늘을 쳐다보며 유달리 반짝이는 별에 대해 궁금증도 생겼지만 작은딸이 우주과학에 대해 질문이 많았다. 딸의 궁금증과 호기심이 더해져 색다른 친밀감을 느껴서 천체망원경을 하나 장만했다. 셀레스테론 9.25인치 반사망원경인데 무거워 딸 혼자는 다룰 수가 없다. 맑은 밤이면 옥상에 올라가 별구경하자고 조르던 딸이 좋았다. 유관으로 보는 것 보다는 더 선명하고 그 이상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플라이아데스 성단이나 오리온자리의 대 삼성 속의 소 삼성을 관찰하며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토성 띠는 말할 것 없지만 겨울 새벽녘에 목성과 띠 속의 대 적점을 볼 때 정말 환상적이었다. 참고로 지구의 자전 때문에 아이피스 속의 광경이 빨리 사라져서 적도의가 없으면 관찰이 힘들다.(적도의: 지구의 자전속도에 맞춰 망원경도 똑같이 움직이게 해주는 장치) 이오, 유로파, 갈리스토, 가니메데의 위성이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각기 위치가 바뀌는 게 경이로울 뿐이었다. 때론 사자자리에서 유성우가 쏟아진다는 뉴스를 듣고 자다가 일어나 옥상에 올라가기도 했지만 간혹 떨어지는 별동별은 관찰했지만 비처럼 쏟아지는 것은 목격하지 못하고 추위에 떨기만한 기억뿐이
둔치 길을 걷는다. 오늘따라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유난히 거슬린다. 좋을 땐 노랫소리로 들리지만 싫을 땐 성가신 소음일 뿐이다. 요즘은 참새구이가 없어졌지만 옛적 포장마차에서 참새구이를 파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참새잡이 하는 엽사도 있었던 것 같다. 공기총에 납 탄을 넣고 쏴서 잡는 풍경을 본 기억이 난다. 먹을 것이 귀해서인지 움직이는 것은 다 잡아 먹던 슬프고 암울한 우리의 과거 모습을 돌이켜본다. 시골에서 토끼사냥이나 까투리사냥은 다반사였다. 노래가사에도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는 구절이 있지 않은가? 참새는 집에서 기르기도 잡기도 쉽지 않는데 그 많은 포장마차에서 팔고 있어 궁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메추리를 참새로 둔갑시켜 참새구이로 팔고 있었던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속이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요즘은 원산지나 비슷하게 생긴 사촌쯤 되는 고기나 물고기를 진짜로 둔갑시켜 파는 행위가 그런 류가 아닐까 싶다. 어릴 적에 마당의 참새를 잡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바가지에 작은 막대기로 괘고 끈을 매달아 세워 놓고 쌀알 뿌려 놓고 멀리서 망보며 기다렸다. 참새가 들어가면 줄을 확 잡아 당겨 가두는 단순한 방법인데 만화에서나 본 것처
예전에 못 이룬 소망을 나이가 들어서 뒤늦게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연유로 생업이 아님에도 창작의 길로 들어선 예술가들이 예전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대학 때부터 치과관련 공부만 하다 보니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많이 부족했다. 고등학교 때 배운 얕은 지식과 교양과정부 때 공부한 게 전부인 나로서는 특히 인문학에 대해 막연한 동경과 열망을 가지곤 했었다. 하지만 일하며 가정을 돌보며 바쁘게 살다보니(?)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잠깐씩 시간이 나도 놀면서 쉬느라 사색하고 독서할 시간은 별로 없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사실 예과 1년 때 졸작이었지만 단편소설 한 편을 모신문사 신춘문예에 출품한 적이 있었는데 내심 인문학에 대한 로망이 잠재돼 있었나보다. 철부지 풋사랑을 노래한 전형적인 삼류소설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출품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그걸 계기로 지금이나마 이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작가가 된 양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로또 복권 한 장 사놓고 일주일 내내 혹시나 하며 기대를 하듯이 행여나 입상 되려나 기대하고 기다리다 탈락
좋은 일이 생기면 한 턱 내는 경우가 많다. 자랑하고픈 마음이 있기도 하지만 기쁨을 함께 나누고 축하하고 같이 즐거워하는 우리의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한 턱 낸다고 한다. 우리 턱이 몇 개냐 물으면 치과의사는 당연히 위턱 아래턱 두 개라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아래턱만 턱인 줄 알고 한 개라고 한다. 턱이 그 턱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의 턱이 위턱 아래턱 두 개니까 한 턱 낸다고 말한다. 사람목숨이 하나뿐이니 내 놓을 수 없듯이 턱이 하나면 감히 한 턱 내겠다고 하겠는가? (우스갯소리) 사람들이 흔히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오늘은 내가 한 턱 내겠다고 호기 있게 질렀는데 집에 가서 잔소리 듣거나 뒷감당 못하고 후회하면서 선심 쓰던 때도 있다. 상대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데도 기어이 한 턱 내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얻어먹고도 괜히 부담될 때도 있다. 어느 때부턴가 서로 눈치 보며 신발 끈 늦게 매며 계산 피하려는 유머프로도 보지만 이젠 서로 공평하게 1/N로 나누는 합리적인 시대가 되었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인심이 좋아 베풀기를 좋아하며, 보여주기 식이든 허례허식이 생활화된 영향 탓이든 조그마한 일이라도 한 턱 쏘기를 좋아한다. 기분
지금까지 30여 년간 수많은 틀니환자를 봐왔다. 통법대로 초진부터 틀니완성까지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지만 인상의 오차, 기공과정에서의 에러, 환자의 적응부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유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연결된 경우가 종종 있다. 인상과 기공과정에서는 빨리 발견할 수 있지만 완성 후에는 조절이 쉽지 않는 경우가 있다. 요즘은 임플란트를 이용한 틀니도 많이 하겠지만 시골의 특성상 유지관리측면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 주기적으로 페킹을 교환하는 것이나 파손된 틀니수리 등으로 오해가 많이 발생해서 술자는 전문병원으로 주로 의뢰하는 편이다. 인상체득에 오차가 있다면 다시 인상 떠서 새로 제작하면 되겠지만 환자의 협조가 부족한 경우엔 원인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서로의 이해와 인내심으로 틀니손질하고 조절해서 해결하지만 그렇게도 되지 않을 땐 원점에서 새로 시작해 인상채득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연세가 많거나 몸이 불편한 어르신께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 또 안 맞으면 어떡하나 하며 대부분 재제작에 들어갈 땐 처음보다 신뢰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없던 일로 하고 타의원으로 가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해와 설득으로 잘 해결되었을 땐 안도
김치는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이다. 우선 김치의 어원을 살펴보면 채소를 절인다는 뜻의 침채에서 딤채 - 짐채 - 김채 - 김치로 변모하면서 오늘날까지 김치로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삼국시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야채를 소금에 절여 먹어왔으며 1700년대에 중국에서 배추를 들여와 배추김치가 대중화 되면서 대표적인 김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전부터 각종 채소를 절여 먹던 김치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으므로 우리에겐 특별할 것이 없는 단어이고 늘 우리에겐 생활화 되어 왔던 김치는 김장김치, 백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파김치 등 삼백 가지가 넘는 다양한 김치 맛에 우리는 당연히 김치는 곧 대한민국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요즘 들어 건강식품으로 인정되어 세계적으로 인기가 치솟으니 이웃나라에서 자기네 문화라고 우기며 파호차이라며 소개하는 웃음꺼리를 자초하고 있다. 중국어인 파호차이는 채소를 절여서 만든 여러 반찬의 총칭일 뿐 배추김치와는 별개다. 일전에 중국의 유명배우가 김치를 파호차이라 소개하면서 소금에 절이지도 않고 양념을 발라 만든 반찬을 자기네 고유의 전통 음식이라며 유튜브에 올린 적 있었는데 발효시키는 과정과 젓갈 등의 재료
냇가에서 고무신 배 띄우기 놀이하던 추억의 검정 고무신, 필자의 어린 시절엔 다수가 말표(상품명) 검정 고무신을 신었으며 여자신발은 고무신 모서리 부분에 촌스런 꽃무늬가 그려져서 구분되었다. 형편이 조금 나으면 흰색 고무신을 신었으며 그 중 부잣집 아이들은 운동화를 신기도 했고 부러워한 기억이 난다. 검정 고무신이여도 처음 신을 땐 발이 좀 아팠지만 새 신이어서 기분은 좋았다. 좀 신다보면 발이 적응하여 편해졌으며 사시사철 검정 고무신이여서 겨울에는 지면과 맞닿아 유독 발이 시렸고 동상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겨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교장 훈시 들을 때 발을 동동 굴렸던 기억들을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라며 먹히지도 않을 것이다. 주로 맨발로 다녔기에 신발이 닳아 바닥이 얇아지면 지면에 닿는 가려움과 마찰에 의한 따가움이 합쳐져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결국 신발에 구멍이 날 때까지 신다가 새 신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들… 오래 신으면 늘어나기도 하고 구멍도 나서 달리다가 잘 벗겨지고 발바닥이 까지기도 했다. 필자는 전교생이 상당히 많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신발장이 초등학교 교실 복도에 있었는데 검정 고무신이
갑진년 벽두에 늘 하던 결심이어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달리기를 꼭 권해본다. 100세 시대에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건강이다. 가족의 안녕, 친구들, 재산... 무엇보다도 자신의 건강이 제일 소중하다. 자신의 심신이 건강해야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맛난 음식 잘 먹고 적절히 운동하며 체력을 단련하는 것이 살아있는 증거이고 가장 큰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침대에 누워 가족과 지인들이 아무리 맛난 음식 들고 찾아온들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음만 할까? 건강한 사지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관심 갖고 관리한다면 앞으로 더 값지고 질 높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들판을 뛰어보자! 필자의 고장은 진료실 밖을 나가면 이내 들과 하천으로 연결되어 있어 마음껏 뛰고 달릴 수 있다. 여건이 허락되지 않을 경우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주변 어디라도 걷고 달릴 수 있는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주변의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 산책로 가까운 하천 등, 일주일에 두세 번 아니, 단 한 번이라도 걷고 달리며 쌓인 스트레스 훌훌 털어내자! 실천에 옮기기도 힘들지만 막상 달리다 보면 숨차고 지루하지만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달리고
흥미삼아 필자의 비공개 산문집(단편소설) ‘백수의 꿈’ 중 한 편을 소개한다. 어렸을 때 본 만화의 한 장면을 토대로 엮었다. 요즘 들어 본의 아니게 다양한 연령층의 백수가 양산되고 있다. 힘든 일은 꺼리게 되어 외국인 근로자로 대체되고 각종 실직 수당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청년백수를 안타깝게 생각하며 한 우물을 파는 우리 시대의 우직함도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백수... 종일 빈둥거리는 게 일과, 만사가 귀찮아 일 안 해도 밥 해 주는 엄마께 미안해하면서도 늘어만 가는 뻔치, 평생 백수의 삶, 꿈도 희망도 없는 되는 대로의 삶. 어느 날 낮잠 자다가 꿈을 꾸었어. 저 멀리 담 벽 끝에 조그만 구멍이 보이는 거야.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일명 ‘개구멍’이라고도 하지. 들어가서 좀 지나다보니 나무그늘 아래 희미하게 두 노인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어. 가까이 다가가니 옥황상제와 염라대왕께서 세월아 네월아 바둑만 두는 거야. 재미있어서 옆에서 훈수 두니까 옳거니 하며 좋아하시는 거야. 옥황상제께서 바둑을 두다가 돌아보며, “여긴 왜 왔어?” “심심하고 무료해서 재미꺼리 없나 해서요.” 품에서 거울을 꺼내 보여주며 껄껄 웃으시며, “훈수도 해 줬으니 10년 후
삼국유사의 고장 내 고향 군위가 2023년 7월 1일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 전국의 시군구 중 소멸도시지수 1위, 평균연령과 노령인구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들 중에 하나라는 불편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군위가 대구시민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필자가 공중보건치과의사를 시작으로 3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경제적으로나 교육적인 이유로 이농인구는 증가하고 유입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로인해 자연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연령 증가로 인해 노령인구의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전체가 부유해지면서 평균수명이 높아진 영향도 있지만 여기 군위에서는 일흔 세로는 경로당에서조차 심부름하는 나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육자 달고는 두말할 것도 없고 어딜 가도 일흔은 명함을 내밀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 어릴 적 (대략 두 세대 전)만 하더라도 회갑연 한다고 동네가 떠들썩할 정도로 장수했다며 모두가 꽹과리 치고 장구 치며 푸짐한 음식을 나눠주며 축하해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즈음에 와서는 회갑생일 축하를 해도 별로 내키지 않을 것 같다. 훗날 칠순잔치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팔순쯤 되면 축하를 받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