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4 (수)

  • 흐림동두천 0.4℃
  • 맑음강릉 0.7℃
  • 서울 2.6℃
  • 구름조금대전 0.1℃
  • 구름조금대구 3.4℃
  • 흐림울산 3.9℃
  • 구름많음광주 2.7℃
  • 구름많음부산 5.6℃
  • 맑음고창 -1.0℃
  • 맑음제주 7.8℃
  • 흐림강화 1.0℃
  • 맑음보은 -3.0℃
  • 흐림금산 -2.0℃
  • 구름많음강진군 3.5℃
  • 구름많음경주시 3.2℃
  • 구름많음거제 6.3℃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잠재된 로망

시론

예전에 못 이룬 소망을 나이가 들어서  뒤늦게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연유로 생업이 아님에도 창작의 길로 들어선 예술가들이 예전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대학 때부터 치과관련 공부만 하다 보니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많이 부족했다. 고등학교 때 배운 얕은 지식과 교양과정부 때 공부한 게 전부인 나로서는 특히 인문학에 대해 막연한 동경과 열망을 가지곤 했었다. 하지만 일하며 가정을 돌보며 바쁘게 살다보니(?)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잠깐씩 시간이 나도 놀면서 쉬느라 사색하고 독서할 시간은 별로 없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사실 예과 1년 때 졸작이었지만 단편소설 한 편을 모신문사 신춘문예에 출품한 적이 있었는데 내심 인문학에 대한 로망이 잠재돼 있었나보다. 철부지 풋사랑을 노래한 전형적인 삼류소설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출품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그걸 계기로 지금이나마 이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작가가 된 양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로또 복권 한 장 사놓고 일주일 내내 혹시나 하며 기대를 하듯이 행여나 입상 되려나 기대하고 기다리다 탈락 후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꿈이었다는 걸 깨닫고 그 이후로 깨끗이 접었다. 안 될 줄 짐작했지만 막상 떨어지니 마음이 좋지는 않았고 미련으로 남아있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시작해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나이 먹을수록 자신감이 줄고 뒤늦은 나이에 과연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자꾸 미루다보면 기회는 오지 않는다는 절박함으로 틈만 나면 글을 쓰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그런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 자체가 나에게는 새로운 도약이었다. 피하지 않고 부딪히는 일, 무모함을 감수하고 드러내 놓는 일, 그게 크나큰 무기고 자산이며 무슨 일이든 하면 할수록 힘들지만 그만큼 역량이 커가는 게 남다르다고 격려해 주시는 분도 있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 뒤늦게 독서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주로 시집이나 예전에 관심 두었던 소설을 보지만 집중력도 떨어지고 눈도 쉽게 피로를 느낀다. 모든 게 때가 있다고들 하는데 좀 더 빨리 시작했더라면 이해도 빠르고 피로도 적으련만... 

 

여하튼 책을 잡고 있으면 시간도 잘 가고 시간을 의미 있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 위안이 된다. 독서에 열중하다보면 불현듯 한 단어가 떠올라 시가 완성될 때가 있다. 최소한 노트나 메모지 그리고 휴대폰이 있으니 순간 떠오르는 단어들을 잊지 않고 메모해두면 글쓰기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한 번쯤 생각한 적이 있거나 꿈꾸고 희망한 적이 있었던 일에 대해 불현듯 기회가 와서 실행하게 될 때가 있다. 어쩌면 기회가 되어 할 수 있는 일들이 살다보면 많이 생긴다. 현재의 상황에서 시간도 없고 여건도 안 될 거라며 지레 포기하기 보다는 인생이모작이란 말도 있고 의학의 발달로 수명도 많이 늘었으니 지금부터라도 예전에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여건은 만들기 나름이라 생각한다. 퇴직이후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라도 다양한 취미생활과 소일꺼리를 만드는 준비를 해야 한다. 혼자가 되었을 때 시간을 보람되게 보내는 계획, 둘이 있을 때, 서너 명 있을 때, 여럿이 있을 때의 계획 등을 찾아서 준비해 보면 지금의 순간순간들도 도저히 허투루 보낼 수 없다.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훗날 삶의 질도 너무나 차이가 날 수 있으리라. 

 

주어진 운명, 혹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가족과 자식을 위해 헌신해온 대다수의 중년 가장들의 고뇌를 누가 알아줄까? 젊은 시절 가족과 떨어져 몸을 혹사하며 헌신했지만 지나고 보면 허무함만 안겨주는 안타까운 사례들을 주위에서 종종 보노라면 마음이 씁쓰레해진다. 진료실에서 평생 보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행복일수 있지만 잠재된 로망을 실천하는 시간을 계획해 봄이 어떨지 조심스럽게 권해 본다. 

 

더불어 건강을 잘 돌보아서 최상의 의료시술로 환자를 돌보고 가족 모두가 건강하며 건강하게 활동하길 바란다. 몸이 쇠진하고 피폐해질 때에 이르러서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오늘 하루하루 건강하고 밝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행복의 첫째 조건이라 생각한다. 백세시대에 더욱 더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하고 싶었던 무엇이든 미루지 말고 실행해야 한다. 깨어나야 한다. 깨어나지 못하는 티벳 우화의 수달의 삶도 괜찮다면 괜찮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렌착1)

 

쓰러질 때까지 
떠날 때까지 
수달과 올빼미의 관계2)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조건적 희생인가
전생에 진 빚을 갚고 있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끝없는 희생 
깨지 못한 환상

 

벗어날 수 있을까
갈수록 옥죄이는 
일상적 삶의 무게 

 

행복의 비명이다 
울분의 칼자루 내리쳐도
다시 반복되는 일상

 

 

--------------------------------------------------------
1)렌착: 전생에 진 빚
2)티벳우화 ‘수달과 올빼미 인용’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