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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석

Relay Essay 제2486번째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며, 일상의 패턴 또한 다양하다. 그러나 최근 많은 사람들의 퇴근 후 패턴이 비슷해지고 있다. 바로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미디어 서비스들 때문이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유튜브 한 편, 넷플릭스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삶의 낙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배구 선수 김연경도 자기 전 미디어 서비스들을 향유하는 시간을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한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필자도 이와 다르지 않은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디즈니에서도 디즈니 플러스라는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유년기 시절을 디즈니 만화동산과 함께 보냈기 때문일까? 추억에 사로잡혀 나도 모르게 디즈니 플러스를 결제하였고, 처음으로 선택한 영화는 ‘크루엘라’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루엘라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생소하다고 생각하겠지만,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악당 역할을 맡은 인물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큼 ‘악당’이라는 이미지가 확고하게 잡혀있는 캐릭터이다. 이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영화에서 어떻게 재해석했을지 궁금했다.

 

영화를 시청하면서, 한시도 영화 속 크루엘라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먼저 자러 들어간다는 아내의 말도 못 들을 정도로 말이다. 영화 속 크루엘라(엠마 스톤)를 뚫어지게 보다가 먼저 자러 들어간다는 아내의 말을 못 들은 것이다. 물론 절대로 주연배우가 너무 예뻐서 넋 놓고 보느라 그런 것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재해석’ 때문이었다. 크루엘라의 성장과정은 마치 영화 ‘조커’를 보는 기분이었다. 물론 조커라는 캐릭터와 같은 완성도가 높은 다크함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불운과 불행이 차곡차곡 쌓이는 전개는 정말 닮았다고 생각이 되었다.

 

크루엘라는 유년 시절에 비극적인 사건을 겪는다. 그래서 자신의 본 모습과 천재성을 철저하게 감추고 ‘에스텔라’라는 캐릭터로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고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며 내면의 천재성과 악마성이 표출된다.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버려지고 밟히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자신을 극단적으로 뾰족하게 드러내며 확고한 악당 캐릭터가 된 것이다.


이렇게 ‘크루엘라’에서는 마냥 악당인 줄 알았던 캐릭터를 재해석했다. 유년기 시절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를 보면서는 크루엘라는 못된 악당이라고만 생각했지, ‘왜 크루엘라가 악당이 된 것일까?’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결과만 보았지 과정에 대해서는 들여다본 적이 없는 것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한 영화를 보면서 필자 또한 자연스레 ‘과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주변 일의 ‘과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였고, 불현듯 ‘세상에 진상 환자는 없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선배를 떠올렸다. 환자가 진상이 되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보면 분명 우리들의 실수가 누적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거나, 과정이 아닌 선천적 요소들로 왜곡된 인지와 성격을 지닌 환자들도 있기에 ‘진상 환자가 없다’는 말은 하기 어렵다. 하지만 충분히 또는 제대로 설명 받지 못하여서, 너무 긴 대기를 하게 만들어서, 비싼 가격으로 부담을 받아서 등 좋지 않았던 다양한 경험이 쌓여 감정이 극에 달하는 환자도 분명히 있다. 어린 시절 치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나 내 병원에 오기 전 환자가 겪은 타 병원에서의 진료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일련의 과정에서 트리거가 당겨진 환자의 입장에서는 되려 우리가 진상 원장이라 여겨질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진상 환자에 대한 인식을 재해석해 보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나를 돌아보며 재해석할 시간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오늘 밤에는 엠마 스톤만 볼 게 아니라 나를 다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