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라는 용어조차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던 2016년 3월, 전 세계의 이목이 대한민국 바둑판에 쏠렸다. 세계 최정상급 프로기사인 이세돌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을 펼쳤기 때문이다. 바둑은 인류가 고안해낸 게임 중 가장 복잡하며 많은 대국 경험이 필요하고 가로세로 19줄, 361개의 점으로 이뤄진 바둑 경기에는 10의 170제곱이라는 천문학적인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아무리 뛰어난 성능을 가진 컴퓨터라 하더라도 이 모든 경우를 계산해 최적의 수를 찾는 게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직관과 느낌이 중요하기에 컴퓨터가 숙달하기에는 어려운 게임으로 여겨왔다. 이세돌 9단은 1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 어려운 창의적인 수법으로 경쟁자들을 제압하여 지난 10년간 세계 대회에서 18차례 우승하였기 때문에 전문가 대다수가 이세돌의 우세를 전망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세돌의 1승 4패의 결과와 AI의 위력을 생중계로 지켜본 많은 사람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알파고는 지금까지의 인공지능과는 차원이 다른 ‘딥러닝’이라는 스스로 사고하고 학습하는 기술이 적용됐고 알파고는 스스로 규칙을 찾아내 바둑을 두고 이겼기 때문이다. 이걸 보면서 SF 영화에서 보던 로봇과 같은 기계들의 역습으로 사람들이 휘둘리는 섬뜩한 미래세상이나 인공지능의 발달로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사회를 상상하게 되었다.
2020년 말 ‘이루다’라는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가 국내에 소개됐다. 20대가 실제로 쓰는 말을 자유로이 구사하면서 순식간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성 소수자와 장애 등에 대한 심한 혐오 발언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특정인의 계좌번호와 주소 같은 개인정보도 유출된 것이 알려지면서 얼마 되지 않아 서비스는 중단되었다. 빅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데 무분별한 정보 수집과 활용을 막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 이것은 단지 정보 보호에만 머무는 규제가 아니라 규정을 지키며 AI의 특성상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과정이 잘못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료를 관리하는 실무자는 윤리적으로 공정하여야 하며 편향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활용할 때의 AI 윤리기준을 만들고 학교에서도 AI 윤리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소프트웨어 컨설팅 부문에서 업계 1위의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인 에릭 베리지는 ‘기술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Why tech needs the humanities)’라는 주제의 TED 강연에서 자신은 현대사회가 STEM(Science·Technology·Engineering·Mathematics : 과학·기술·공학·수학의 앞글자 약어)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고 말했다. 물론 에릭 베리지는 STEM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라기보다는 인문학보다 과학이 훨씬 더 높은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빠져 버리면 우리에게는 STEM에 지배당하는 미래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에릭 베리지는 과학이 우리에게 ‘만드는 법-기술’을 가르쳐준다면, 인문학은 ‘왜 만들어야 하는지-비판적 사고’를 알려준다고 주장한다. 구글이나 애플 등의 IT 대기업에서 채용하는 일자리의 65%가 STEM과는 직접적인 연관 없는 ‘비기술직’ 임을 언급하였다.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필수능력은 STEM이 아니라 ‘다양성’이라고 한다.
첨단 과학의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요즘은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문학의 위기라고 불리는 시대이기도 하다. 책을 읽거나 혹은 인생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할 기회도 없이 당장 눈앞에 급급한 일들만 살피며 여유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학에서도 점점 사라져 가는 인문학 관련 학과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인문학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인문학이란 말 그대로 사람과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으로 인간 본연의 존재가치와 인생의 모든 활동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자연을 다루는 자연과학과는 대립하는 영역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며 인문학을 잘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화합하고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도구의 개발은 산업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디지털 혁신은 일상을 온라인 세상으로 영역을 넓혀 앉은 자리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아주 편리한 도구가 되었다. 가족이나 친구가 모여도 대화보다는 각자의 휴대전화로 온라인 속의 콘텐츠들과 시간을 보내는 현실에서 우리는 편리함을 얻는 대신 인간성과 관계를 잃고 고독과 우울증을 겪고 있다. 스마트폰이 더 편하고 더 빠른 세상을 열었지만, 기계시대의 디스토피아를 피하려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인간 가치 회복을 위한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6년여가 지난 지금 인공지능 기술은 빅테이타를 기반으로 더욱 발전하였고 의료계에서는 영상 진단 분야와 성장 예측 등에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식을 추출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인간은 창의적인 사고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적절한 판단이 가능해야 한다. 과학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고 사회는 기술을 잘 사용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첨단기술과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지면 사회가 이를 받아드리고 응용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두 가지만 가르치는 교육, 소통하지 않는 과학기술, 다양성을 잃은 사회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위험한 곳이 된다. 코딩교육 의무화가 결정되자 사교육 시장에 ‘코딩 광풍’이 분다는 뉴스를 보며, 미래 인재가 될 아이들에게 코딩교육 외에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게 옳은 삶인지 생각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체득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도 함께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더불어 사는데 필요한 인문학 공부는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과 음악을 감상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시를 읊조리며 여행을 하는 등의 다양한 분야가 포함되며 치과에서도 철학이 윤리가 그리고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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