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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야 쉽지

스펙트럼

예방치과의사로서 수련을 시작한 지 3년차가 되었습니다. 진료실 예방진료에 있어 아직도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잇솔질 교육(TBI)에는 확실히 실력이 늘어감을 느낍니다. 환자가 기존에 사용하던 방법을 무시한 채 단순히 바스법을 일괄적로 교육하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 치태 또는 치석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기존 방법으로 닦이지 않는 부분을 선택적으로 수정하도록 교육하는 등 환자의 특성을 적절히 반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일반 칫솔 이외 도구를 권장하는 데에는 맺고 끊음이 확실해졌습니다. 사랑니가 존재하거나 임플란트 상부 보철물 등 과풍융한 부위가 존재하는 경우 무조건 첨단(unituft) 칫솔을 권장하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는 해당 부위의 임상적 양상을 관찰하고 또 그 양상이 일반 칫솔 내지는 치간 청결 도구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지 지켜보며 가급적 실천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는 한편, 부분의치 착용자가 둘 이상의 상실부위 인접치아의 근원심 치은변연을 제대로 닦지 못해 지대치의 수명을 위협하거나 하악 설측 외골증이 과도하여 상방 치아의 치은변연에 만성염증의 징후가 나타나는 경우 등에는 첨단칫솔의 사용을, 뇌병변과 같은 장애요인으로 칫솔질의 정확도가 떨어질 때 회전형 전동칫솔의 사용을 권장하는 데에는 단호하고도 논리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환자의 순응도가 높아지는 것도 체감이 됩니다. 제가 교육한 내용을 잊지 않고 실천하여 치태 또는 치석이 존재했던 부위를 수개월간 깨끗이 유지하며 재내원한 환자의 염증소견이 사라지고 환자가 호소했던 각종 주소 역시 사라졌다는 사실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할 때, 예방치과의사로서의 자부심을 새삼 느끼곤 합니다.

 

그럼에도, 무척이나 어려운 상대가 있습니다. 스스로 관리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공감하지 못하는 환자는 1년에 고작 두세 번 전문가 치아청결술을 받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고, 잇솔질 교육에는 건성으로(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대답하며 술식의 진행을 재촉합니다. 치간칫솔 등 도구를 처방할 때면 아직 집에 많이 남았다고 거부하는, 매우 어려운 상대입니다.

 

언젠가는 잇솔질 교육 도중 ‘말이야 쉽지’ 라며 마음의 소리를 그만 육성으로 내뱉은 환자가 있었습니다. 서로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진 채 너털웃음을 짓는 동안, 어쩌면 이처럼 순응도가 떨어지는 환자들 마음속에 똑같은 소리가 담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요통환자가 되어 정형외과를 방문했을 때, 몇가지 증상과 방사선사진을 확인하고는 자세와 습관을 지적하며 혼내키는 의사 선생님을 마주한 채 ‘말이야 쉽지’ 하고 생각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통증을 완화하고 그 원인을 알아 예방하기 위해 권위를 가진 전문가를 찾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설명으로부터 불편함을 느낀 것입니다. 오히려, 도수치료를 위해 만난 물리치료사로부터 그간 제 나름대로 요통을 해결하기 위해 해온 노력을 인정받았을 때 마음속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보면 레지던트 3년차가 되고부터는 나름의 자신감으로 환자를 꾸짖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순응도가 낮은 이들에게는 특히나, ‘교육한대로 또 안해왔지?’ 라는 생각으로 진료에 임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해봅니다. 당장 내일부터는 ‘잘 오셨습니다. 이전보다 습관이 나빠지지 않으셨네요.’ 와 같이 긍정적인 화두로 대화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말이 정말 쉽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