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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의가 된 원내생

스펙트럼

원내생이 되어 소아치과에서 교육을 받을 때였다. 한 외래교수님께서 책상 위에 플라스틱으로 된 여러 가지 색깔의 물건들을 오밀 조밀 늘어놓으시고 “돈 되는 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옆에 놓인 가방 속에도 비슷한 물건들이 한 가득 들어 있었다. 당시에 무엇을 보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와 내 동기 원내생들은 소아치과 책에서만 보던 물건들을 손으로 만지며 곱게 팔리싱된 레진의 매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 작고 귀여운 것이 소아치과에서 사용하는 교정 장치이며 돈이 되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아마도 엑티베이터나 트윈블록 같은 성장기 교정 장치들이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장치들이 정말 많이 들어있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성장기 교정 장치를 전부 만들어 모아도 그 정도의 양은 절대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외래교수님이 들고 오신 가방은 꽤 컸다. 그 장치들의 값을 기공료로 환산하면 당시 돈으로 천만원 정도 될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 외래교수님께서 돈 되는 것을 배워야한다고 연신 말씀하셔서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있다.

 

98학번 본과 3학년… 당시의 우리는 때묻지 않은 면이 있었다. 의술로 돈을 버는 직업을 택해 놓고 정작 의술로 돈을 버는 모습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이삼십대 못지 않게 매사에 정당성을 많이 의식했었던 것 같고 돈을 버는 일보다 치의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일, 장차 환자를 돈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환자로 보는 일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장기려 박사님이나 슈바이처같은 사람을 의사의 롤모델로 바라보는 사회분위기를 따라 반듯하게 사회화된 모습이 원내생 시절 우리들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그 연세 지긋하신 외래교수님께서 왜 굳이 천만원씩이나 자비를 들여 돈 되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셨는지 잘 몰랐다. 돈 되는 것을 좇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치과의사는 돈을 잘 버는 줄 알았던 것일까... 막상 졸업하고 개원하여 15년을 지내고 보니 지금의 나는 경영에 도움이 되는 치료들을 참 열심히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원내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주어진다면 환자에게 꼭 필요하면서 치과 경영에도 도움이 되는 것들을 원내생들에게 보여줄 것 같다.

 

졸업을 하고 나서 학술대회 장소에서 그 외래교수님을 본 적이 있다. 왜소한 체구에 염색도 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연세 지긋하신 모습 그대로셨다. 치과 관련 회사 영업사원들을 대하시는 소탈한 모습, 후배 치과의사들을 대하시는 자상한 모습으로 기억되었다. 존함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검색 포털에서 치과를 찾아볼 수 있었다. 원장님의 이름을 건 치과... 짧은 진료시간, 단촐한 체어들, 손 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오동나무를 보는 듯한 치과 인테리어의 모습을 보면서 그 외래교수님의 치과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소박한 모습의 개원의이신 외래교수님께서 자칫 스스로 위신을 깎을 수도 있는 말씀을 원내생인 우리에게 당부라도 하시듯 연신 내뱉으셨던 이유를 15년차 개원의가 된 지금에서야 알 것 같다. 좋은 진료를 지속하려면 치과를 경영할 줄 알아야 한다. 원장은 그 경영이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껴본 적이 있어야 한다.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환경 속에서 기공작업에 매진하시는 소장님들과 기사님들에게 적어도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을 정도의 안정감은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젊은 날, 열심을 다해 일하는 치과 직원들에게 섭섭치 않을 정도의 급여는 줄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경영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환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보험진료들을 소신껏 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나와 환자 모두를 위해 만들어 나갈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성장기 교정은커녕 임플란트마저 집을 나가 버린 지금... 나는 내 치과에서, 어떻게 해야 국가의료체계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있다. 점점 가중되어 온 무게 덕분에 그 동안 발달한 근육이 상당하지만 더 견디라는 이 사회의 압박이 여전히 부담으로 다가온다. 내가 원내생이던 시절만해도 정말 좋은 시절이었다는데, 장기려 박사님 시절에는 도대체 얼마나 좋았던 것일까... 원내생 시절 나의 롤모델들보다 후배들의 치과경영을 미리 고민해주신 그 외래교수님의 모습이 훨씬 더 고맙고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15년차 개원의의 때 묻은 생각 때문일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