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솔향 따라 산책하며 즐기는 미술관 ‘바우지움’

안정모 전 치협 부의장, 강원도 고성에 조각미술관 설립
7000평 규모 전체가 포토존, 주말 방문객 300여 명 달해

 

치과계에서 안정모 원장의 이력은 묵직하다. 안 원장은 치협 부의장, 서울지부 의장, 서울치과의사신협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치과계 단합에 이바지했고, 동시에 무려 50여 년 동안 서울 노량진에서 개원의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안 원장이 이제는 매주 금요일 오후만 되면 만사 제쳐두고 동쪽으로 내달린다.

 

안정모 원장은 지난 2015년 강원도 고성에 조각미술관 ‘바우지움’을 설립했다. 부지 매입부터 개관까지 무려 20여 년이 걸린 인생 프로젝트다. 그러나 처음부터 미술관 운영을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 은퇴 후 정착지를 찾다가 산과 바다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고성 풍경에 매료됐는데, 터를 닦던 도중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에 이바지하고픈 마음이 점점 자라났다고 한다. 아내인 김명숙 바우지움 관장이 유명 조각가로 활동하는 데다, 안 원장 자신도 한때 미대 진학을 꿈꿨을 만큼 미술을 극진히 사랑해 오래전부터 다양한 작품을 수집해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싶었습니다. 서울은 종로에만 나가도 미술관이 즐비한데, 고성에는 그런 인프라가 거의 없어 지역 주민들이 문화예술을 즐기기 어렵습니다. 또한 콜렉터로 활동하며 실력은 좋은데 재정 형편이 어려워 전시를 주저하는 예술가들을 종종 봤는데, 그들에게 전시공간을 지원하고픈 마음도 컸습니다.”

 

 

상설전시관인 A관에는 해방 이후 1세대 조각가인 김영중의 작품부터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를 앞둔 문신 작가의 작품까지 안 원장이 오랫동안 수집해온 컬렉션이 있다. B관에는 김명숙 관장이 평생에 걸쳐 작업해온 작품이 있다. 김 관장은 주로 석조와 브론즈를 활용해 여체의 후면을 그만의 역동적인 구도로 표현하며 요조숙녀로 대변되는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전복시켜 왔다.

 

그 외에도 안 원장은 외부 아티스트 전시를 위해 기획전시실을 별도로 세웠다. 심지어 전시 및 부대비용도 일체 부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술관 전체 관람료는 커피 포함 단 1만 원으로 책정했다. 덕분에 바우지움은 급격히 유명세를 탔고, 현재 방문객은 주말 일일에만 300여 명에 이른다. 기획전시는 이미 2025년까지 예약 마감됐다. 그 때문에 커피숍만 무려 세 번을 확장했다고.

 

 

# 드라마·광고 촬영 잇따라

드라마·광고 촬영도 잇따르는 사진 명소로 알려지면서, 바우지움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독특한 건축 양식 덕분이다. 설계를 맡은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는 대관령 터널 공사 현장에서 나온 쇄석을 콘크리트에 엉겨 미술관 벽면을 시공해 자연의 거칠고 불균질한 물성을 재현했다. 덕분에 바우지움은 뒤로 펼쳐진 설악 울산바위·달마봉 풍경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그 자체로 천연의 조각 작품이 된다. 전시관 앞에 넓게 조성된 수공간 ‘물의 정원’도 유명하다. 주변 풍경을 꾸밈없이 비쳐내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풍토의 조건이 그 땅의 건축을 결정한다는 김 대표의 지론과 전문가의 작업 과정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 안 원장의 전폭적 지원이 맞물린 결과다.

 

 

여기에 안 원장의 조경작업도 한 몫 거들었다. 그는 ‘산책하는 미술관’을 모토로 대지 7000여 평을 직접 가꿨다. 지금도 새벽 3시 반부터 저녁 늦게까지 직접 꽃을 심고 나무를 다듬고 풀을 뽑는다. 덕분에 미술관 곳곳을 거닐다 보면 소나무·벚나무·수국·맥문동·마로니에 등 사계절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행보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팬데믹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 조처로 관람객이 대폭 감소해 미술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지난 2019년에는 인근에서 산불이 크게 발생해 미술관 앞 소나무 숲이 상당히 소실됐다. 심지어 화마는 미술관 내부까지 들이닥쳐 동산의 벚나무와 감나무도 태웠다. 게다가 얼굴을 덮치는 뜨거운 열기와 강한 바람을 타고 문자 그대로 총알처럼 빗발치는 솔방울 때문에 생명의 위협도 느꼈다고 한다.

 

“마음이 매우 아팠죠. 불탄 소나무를 보면 지금도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하지만 성수기를 앞두고 있었으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급한 대로 꽃과 나무를 서울에서 잔뜩 공수해왔습니다. 매입 가격을 고려할 틈도 없었고, 인부 품삯도 원하는 대로 줬습니다. 게다가 나무는 화재보상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실로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습니다.”

 

오랜 기간의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공간인 만큼, 앞으로 안 원장은 미술관 운영에 더욱 매진할 작정이다. 물론 현역 치과의사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으므로 당장 은퇴를 고려하지는 않지만, 시기상 다음 행보로 자연스럽다는 설명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미술관을 조경하는 일이 고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힘들죠. 하지만 그만큼 즐겁습니다. 운동도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웃음) 앞으로 미술관을 더 확장하고, 가능하다면 부대사업도 진행해서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바우지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