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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 진료비 공개, 윤리적 문제는 무엇일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41)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개원가에선 비급여 진료비 공개를 요구하는 법에 큰 문제의식을 품고 있습니다. 의료 전문직을 무시하는 정부의 행태에 화가 납니다. 이미 헌법재판소에 올라간 사안이므로 변호를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요. 한편, 윤리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진료비, 공개하는 게 옳은 일일까요? 익명

 

지난 5월 19일 의료기관 비급여 진료내역 및 진료비용 보고·공개를 요구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헌법을 위배하는지를 놓고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이 있었지요. 의료법은 의료기관장이 비급여 진료비용, 항목, 기준, 금액, 진료내역 등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고하게 하는데요. 일단 법적 분쟁이므로, 어렵더라도 법적 측면을 검토한 다음 윤리적 문제제기를 하려 합니다. 저는 법학자가 아니므로, 부족한 점이 있음을 참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개인정보는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말합니다. 한편, 다른 정보와 결합,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 또한 여기에 포함됩니다. 진료내역은 환자분이 사망한 경우를 제외하면 당연히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이며, 다른 정보와 결합할 때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됩니다.

 

따라서, 의료법이 보고하도록 한 내용 중 진료내역은 당연히 개인정보입니다. 진료내역 자체로 개인을 알아볼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정보와 결합했을 때 얼마든지 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는 점을 보건복지부가 간과한 것입니다.

 

한편, 건강보험공단은 개인정보라 하더라도 공익을 목적으로 이런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적절할까요? 공공복리를 위해 기본권을 제한한다 해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헌법 제37조 제2항은 규정하고 있지요. 이를 위해 따지는 것이 과잉금지 원칙으로,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중 하나라도 저촉되면 기본권 제한의 한계를 넘어서게 됩니다.

 

이미 심평원이 비급여진료비 확인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어 환자는 필요시 그 적정 여부를 판단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침해의 최소성, 즉 다른 방법이 없이 오로지 이 방법뿐인가 하는 질문에 개정안은 적절히 답변하지 못합니다. 또한, 일괄적으로 비급여 비용, 항목, 기준을 제출하도록 하는 것은 의료행위의 적용과 결정이 전문가의 판단에 기초한다는 점을 부정하고, 오로지 비용만으로 의료행위를 판단하겠다는 것으로 그 목적의 정당성에 문제를 지닙니다.

 

여기까진 지금까지 관련해서 나온 주장을 요약한 것이므로, 관심 있는 선생님들께선 이런 내용은 다른 지면에서 이미 여러 번 살펴보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의료윤리적 관점에서 비급여 진료비 공개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일단, 환자 선택권 확대라는 측면에서 일견 비급여 진료비 공개는 윤리적으로 옳은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진료비를 공개하면 환자에게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질 것이고, 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확보와 행사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병·의원에서 환자가 원하는 진료를 마음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죠. 의료적 자기결정권이란 선택권과 달리 의학적으로 가능한 선택지 안에서 환자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이를 선택권으로 오해하여 병원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이 절차를 외국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한국과 같은 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는 없으며, 따라서 외국에서 이렇게 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제가 허약합니다. 한국 의료제도 안에서 비급여 진료비 공개가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저는 이것이 환자에게 주는 이득은 별로 없음에도 의료인 자율성을 부정하고 환자를 오도하며 부적절한 자원 분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의료인은 전문직으로서 환자의 이득을 우선하는 최선의 진료를 해야 할 의무를 부여받는 한편, 그에 상응하여 자율성과 독점권을 인정받습니다. 여기에서 자율성이란 외부의 제약에 독립적으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 진료 표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진료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비급여 의료비가 규제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의료인의 자율성과 자율규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비 통제를 이유로 비급여 항목을 분석·공개하려 하고, 이것은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여 다른 병·의원과 차별화하는 시도를 차단합니다. 의료 서비스는 다른 재료, 인력, 접근법을 사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될 수 있고 의료인과 환자의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에도, 이런 측면을 무시하는 것은 의료 서비스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합니다.

 

또, 한국은 안타깝게도 건강정보 문해력(health literacy)이 낮습니다. 2020년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설문조사 대상자 중 29.1%만이 적정 수준의 건강정보 문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건강정보나 건강행동에 관해 관심이 없다는 의미인데, 이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과는 별개로 현 상황에서 국민은 건강 관련 결정을 할 때 충분한 정보에 바탕을 두고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진료 수준과 무관하게 광고나 낮은 비용 등에만 초점을 맞추어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은 특정 의료기관의 쏠림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환자가 쏠려 지방 병원은 어려움을 겪고, 일차 의료기관의 지역사회 관리 및 주치의로서 역할은 제대로 수행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대형 병원이 비싼 것은 당연하고, 동네 병·의원은 저렴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현지형에서 비급여 진료비 수집·공개는 비싼 의료기관과 싼 의료기관의 양극화를 더 심화하여 결과적으로 의료기관 및 과별 편중화를 더 강화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한국은 사영 의료기관에 단일 보험과 당연지정제를 통해 공적 역할을 부여하는 특수한 제도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고, 이 아슬아슬한 균형은 한국 의료 체계가 고도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환자-의료인 관계나 의료의 질적 향상과 같은 것이 희생됐고, 환자와 의료인 모두 의료 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도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의료비 통제나 외국의 방향성을 따라 의료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무엇보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것을 생각할 때, 제도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가져가야 할지라도 그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선 충분한 점검이 필요해 보입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