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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제 나와 같이 가요

Relay Essay 제2512번째

야간진료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새로운 대화창이 만들어지면서 메시지 하나가 덩그러니 있는 핸드폰을 발견하였다. 낯익기는 하지만 익숙하지는 않은 프로필 사진. 아버지였다.

 

‘아버지께서 어쩐 일로 연락을 주셨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내용을 들여다보니, 어머니께 보내야 되는 연락을 잘못 보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다.

 

언제든지 오고 갈 수 있는 평범한 내용의 메시지였다. 하지만 아버지와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첫 메신저 대화였기에, 나에게 그 의미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아 그동안 단톡방을 통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 따로 연락을 드린 적이 없었구나. 내가 아버지를 조금은 외롭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버지와의 옛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이셨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모습 사이로 힘들고 외로운 모습 또한 스며있었던 것 같다. 여느 때와는 달리 만취해서 집에 들어오실 때면, 나와 동생은 한껏 부푼 마음으로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런 날은 빈손으로 들어오시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와 함께 양손 가득 간식을 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어렸던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 날의 아버지는 힘들고 외로운 마음을 술로 달래고 오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그 힘든 마음을 술잔에 담아 남몰래 삼키셨을 것이다. 그리고 술로도 달랠 수 없었던 힘든 마음을 가족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 양손 가득한 간식으로 그 모습을 숨기셨던 것 같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참으로 외로운 것 같다. 아버지에게는 가장이라는 직위와 그 직위를 지키기 위한 권위가 함께 부여된다. 그리고 그 권위를 잃지 않기 위해 수많은 아버지들은 외로움을 감수한다. 나의 아버지 또한 세상의 수많은 아버지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셨을 것이다. 가족들이 자는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아침 일찍 혼자 출근하셨을 것이고, 밤늦게 자식들의 잠든 모습을 보며 하루의 피로를 녹이셨을 것이다. 이러한 소소한 위안도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나 누릴 수 있는 위안일 뿐이다. 2~3년씩 지방으로 발령을 가게 되면, 처자식들과 떨어져 지내야 되는 경우는 다반사다. 그럴 때는 하루 일과를 힘겹게 마치고 퇴근해도 누구 하나 반겨 주는 이 없다. 외로울 것이다. 아니,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버지들은 외로움을 버텨내어야 한다. 이 외로움을 견뎌내어야 처자식이 마음 놓고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고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나 보다. “우리가 쓰고 있는 돈은 아버지의 외로움의 값이다”라는 말이...

 

힘든 마음을 외로이 삼키는데 익숙해져서 그러셨을까? 아버지는 직접적인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색하다기보다는 어색해 하셨던 것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무뚝뚝한 편이셨다. 그런 아버지가 나의 치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소식에 축하한다며 꼭 안아주셨던 아늑함은 지금까지도 큰 위안과 응원으로 남아있다. 진심이 담긴 한순간이 이렇게 오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아버지께, 이제는 내가 이 텅 빈 대화창을 존경과 사랑을 담아 채워드리고 싶다.

 

추억에서 돌아와 핸드폰을 다시 잡아본다. 대화창을 다시 바라보니, 어색해 하며 메시지를 보내셨을 아버지의 모습이 선하다. 이제는 소중해진 아버지와의 대화창에 나도 몇 글자 적어 보내본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차차 익숙해질 대화창을 바라보니, 평소에 흘려듣던 노래의 가사가 한순간 마음에 와닿는다. 지금도 내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노래 한 소절. 이 한 소절을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께 전해드리고 싶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제 나와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