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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수필(750)>
앙드레 사랑 (完)
신덕재 원장(서대문구 중앙치과의원)

주식값 떨어져 서여사 “쪽박” 쫓겨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이슬이 서리로 변하는 어느날, 반갑지 않은 권부장이 왔다. 오늘은 전과 달리 권부장과 서여사 사이에 냉기류가 흘렀다. “권부장! 내가 당신 믿고 돈을 맡겼지 누구보고 그 많은 돈을 맡겼겠어요” “사모님! 내가 뭘 잘 못했다고 그래요? 한부철강이 부도 나는 바람에 그렇게 된게 아닙니까? 한부철강이 얼마나 잘 나가는 회사였어요” “거기다 왜 깡통계좌는 집어넣어 빚까지 지게해요?” “다 사모님 좋게 하려고 한 것 아닙니까?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아이고 이젠 망했다. 돈 한 푼 없이 다 날린데다 빚까지 지게 됐으니 어떻게 하면 좋아!” 성대수술로 목소리는 낼 수 없었으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아마 서여사가 증권회사 권부장에게 많은 돈을 맡긴 모양인데 그것이 잘 못돼서 내가 태어났던 미니네 꼴이 된 모양이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또 도둑놈이 생겨날 판이다. 도둑은 또 다른 도둑을 만드는 모양이다. 권부장과 서여사가 다툰 후 사람들은 IMF가 어떻고, 경제 식민지가 어떻고, 실업자가 어떻고, 파산이 어떻고, 빅딜이 어떻고, 환율이 어떻고…… 하며 내가 알아듣기 힘든 말들을 쏟아냈다. 나의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또 밑두리 콧두리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 이상한 소리들은 나로 하여금 현대빌라 302호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들은 검정옷에 빨간 모자를 쓰고, 까만 안경을 끼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나는 그들의 위압에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내고 탁자 밑에 숨어 버렸다. 그들은 여기저기 빨간 딱지를 붙였다. 그들은 악당이었고 깡패였다. 험상궂기가 혁명군이나 폭도와 같았다. 내가 쥐를 잡을 때 쥐가 나를 보고 느끼는 공포 같은 것이다. 무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이 병신 고양이는 밖에 던져 버리지”하고는 간단하게 나를 3층 창 밖으로 던져 버렸다. 어마어마한 높이였다. 전에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있을 때 저놈들을 잡아야지 하면서 한번 뛰어내려 보려고 시도하다가 너무 높아서 포기했던 높이인데 오늘 무서운 사람에 의해 밖으로 내던져졌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 균형을 잡아 땅에 무사히 떨어졌다. 공중에서 여러 바퀴를 돌면서 세상을 보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초라한 모습으로 주목나무 밑에 숨어 정신을 가다듬었다. 왜 내가 현대빌라 302호에서 쫓겨 났을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충실히 서여사에게 봉사도 했고, 기쁨과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다만 서여사와 권부장 일은 내가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까 나의 내쫓김은 모두 나의 뜻과는 무관한 것이다. 현대빌라 302호는 망했다. 서여사는 서여사대로 무절제하게 살면서 한 때 좋았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됐고, 깡통계좌로 집은 경매처분됐고, 성형외과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리스로 외국에서 빌린 비싼 의료장비가 환율이 3배이상 오르는 바람에 본전은 고사하고 이자도 못물게 된데다 환자는 줄어 수입이 반도 안되니 망할 수 밖에……. 빨간딱지. 파산이다. 나 때문에 그런것이 아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데 왜 내가 이처럼 비참해져야 하나? 이 모든 것이 남의 돈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상하다 왜 자기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만큼만 쓰고 벌면 될 일이지 무엇 때문에 남의 돈을 빌려 무리한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남 원망하고 훈수 둘 처지인가? 나는 어떤가? 몸은 장애에다 벙어리 신세고, 집도 없고 주인도 없는 떠돌이 신세 아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모든 것이 사람이라는 인간 때문이다. 인간의 도구인 굴착기는 엄마를 빼앗아 갔고, 인간의 이기(利器)인 레이저는 나의 목소리를 앗아갔고, 인간을 윤택하게 만드는 돈은 나에게서 집마저 빼앗아 갔다.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 엄마!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지요? 엄마는 아무 대답이 없다. 그래, 이렇게 있을 수 만은 없는 일이지. 살아갈 궁리를 하자. 그러나 지금까지 사람들 손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먹이를 구하는 방법이라든가, 잠자리를 구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생소하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해결책을 알아볼 힘도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서여사 아니 인간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나 스스로 부끄러운 점도 있다. 서여사의 사랑만 믿고, 고양이를 망각하고 마치 사람인양 생각했고 행동하지 않았는가? 그러다보니 나는 사람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것이 됐다. 주목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