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공학을 전공하던 20살, 대학교 신문에서 만화를 연재하였다. 공대생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학교 일상을 유머로 풀어낸 4컷 만화였다. 한 달에 한 번 연재하는 만화였지만 한 달 내내 창작의 고통을 받고 지냈다. 하루는 뭘 그릴까 고민을 하다,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공대라 여자 비율이 너무 적어서 고통받는 우리가 생각났고, 멧돼지 철(?)이라 야생 멧돼지를 조심하라는 안내문이 기숙사 곳곳에 붙여져 있었기에 그 두 개를 합쳐보자는 생각을 하였다. 만화를 첨부할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불가능하여 글로 대체한다. (궁금하다면 구글에 “여기는 호그와트 2화”를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1컷. 사냥꾼이 멧돼지를 총으로 노리고 있다.
2컷. 갑자기 남학생 총 앞으로 뛰어들며 “안되욧!!”
3컷. 사냥꾼 놀라며 “아니 학생 왜 이러는 거야!!”
4컷. 갑자기 예뻐진 멧돼지. 속눈썹이 그려져 있고 리본이 달려있다. 남학생 왈 “학교에 여자 수 줄이지 마요.”
나는 학교에 여학생 수가 적으니, 암컷 멧돼지라 할지언정 여자라 소중하니까 숫자를 줄이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만화를 그렸다. 나름 학교에 여자 수가 적다는 포인트를 멧돼지와 잘 엮었다고 생각해서 뿌듯한 마음으로 지면에 실었다. 하지만 왠 걸. 조만간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내가 학교 여학생을 비하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의 내용을 들어보니, 4번째 컷이 문제였다. 학교 여학생들이 멧돼지처럼 못생겨서 사냥꾼이 오해하고 총을 쏠 뻔한 것을 남학생들이 나서서 막았다는 해석이었다. 정말 당황했다. 당시 정말 당황한 이유는, 그렇게 해석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곤란했다. 이상할 것이 없는 해석 정도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해도 말이 되는데...? 라고 생각했기에 더더욱 곤란했다. 여기저기 해명하고 다녔지만, 공개적으로 해명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 오해를 하고 있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리 생각할 것이다. 아마 까먹었겠지만.
진료하다 보면 환자와 다투기도 한다. 내가 명백히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만, 의외로 그런 경우에는 생각보다 다툼이 커지지 않는다. 내가 인정을 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는 정당한데 환자가 오해하는 경우에 다툼이 커진다.
가령, 정성껏 앞으로의 치료계획을 설명해 드렸으나, “발치”라는 단어에 꽂혀서 역정을 내시며 나가시는 할아버지. 진료비는 왜 내야 하냐고 욕까지 하고 간다. 다시 붙여드려도 곧 떨어질 탈락 인레이를 들고 온 아주머니. 원래 붙여드리면 안 되는 거라고 말씀에 말씀을 드려도 써보신다길래 붙여드렸는데 3일 뒤 도대체 뭔 재료로 붙였길래 이게 또 떨어지냐고 와서 불만을 제기한다. 제가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내 의도를 오해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화내며 나를 쳐다보는 저 눈빛을 보면, 마치 돈에 눈이 멀어 당신의 지갑을 털어가려 하는 악덕 치과의사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보인다. 유명하신 누구의 기준에는 맞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나의 양심 진료를 보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런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 친구들과도 대화해보고 혼자서도 머리를 굴려봤지만, 결국 뻔한 답밖에 없다. 친절하게, 진실하게 그리고 많이 소통하는 것이다. 직접 불만을 표시한 사람이 한 사람이었다면, 속으로 불만 가진 환자는 열 명쯤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포기를 한다지만, 환자와 다툼이 생기고 나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웃고 나가셨다가 다음번에 태도 돌변하여 오시는 분들을 보면 계속 저 마음을 숨겼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오해받는 게 싫다면,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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