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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치과에만 과잉진료를 문제 삼나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46)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치과에선 과잉진료 관련한 문제가 이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의과의 다른 분야에서도 과잉진료가 있지 않나요? 치과의 일만이 아닌데도 유독 치과와치과의사만 지목해서 과잉진료 이야기가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익명

 

맞습니다. 과잉진료 문제는 치과만의 일이 아닙니다. 최근 사례로는 백내장 수술이 실손보험 보장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고 있죠. 백내장의 치료를 위해 최근에는 다초점 인공 수정체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단초점 인공 수정체와는 달리, 수술받았을 때 불편이 덜하므로 시력 교정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백내장은 실손보험 보장 항목이지요. 이것을 역으로 이용해 백내장이 없는데도 시력 교정 등의 목적으로 백내장 수술 처방을 내고, 환자는 사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백내장 수술 건수가 2016년에는 약 50만 건이었는데, 2020년에는 70만 건을 넘어서게 되는 것은 과잉진료를 의심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과잉진료라고 볼 수 있느냐는 반박도 있지요. 백내장 진단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 오히려 미리 백내장 수술을 하는 것은 조기 치료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이 논의 구조는 치과 영역의 과잉진료 논쟁과 같지요. 물론, 극소수의 문제 사례는 존재합니다만, 치과 일반에 덧씌워져 있는 과잉진료 혐의는 우식이 없는데도 우식이 있다고 진단을 내리고 보존 술식을 권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식 진단은 치과의사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는 데다, 초기 우식이 있는 치아를 미리 치료해서 향후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겠다는 치료전략도 충분히 가용하였다고 생각한다면 치과마다 우식 진단의 차이를 꼭 과잉진료라고 부를 수 있는지 재검토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왜 치과에서만 더 크게 목소리가 나오느냐에 대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명예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팔아넘겨 현 상황을 만들어 낸 누군가가 미워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더 큰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석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거꾸로 생각해보는 거지요. “다 과잉진료를 하는데 치과만 문제 삼는다” 대신, “다 과잉진료를 하는데 치과가 먼저 매를 맞는다”로 말입니다.

 

지금은 싹 들어갔는데, 한때 의사와 의료에 대한 불신을 극렬히 표현하는 책들이 서점가에서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고 허현회 씨가 이쪽에서 저술가로 유명세를 얻었고, 일본에서 출판된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등의 책이 나오는 족족 번역되었습니다. 그 극단에는 모 전 한의사가 이끌던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즉 안아키 카페가 있었지요. 이들 책이나 운동은 같은 생각을 공유합니다. 현대 의료는 환자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으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필요 없는 치료를 강요한다는 것. 네, 과잉진료를 문제로 삼는 생각이 똑같이 배경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꽤 오래되었어요. 문명 비판가였던 이반 일리히가 1970년대에 발표한 『병원이 병을 만든다』라는 저서는 의료 전문직을 강렬하게 비판하면서, 의료기술의 발전이 질병을 치료한 것이 아니라 단지 생활 환경의 개선이 건강을 향상한 것이고 의료비용만 상승하면서 의료인과 병원만 돈을 번다고 꼬집지요. 병원에선 온통 필요 없는 진료만 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당시 일리히의 지적은 살펴볼 필요가 있었어요. 의료 서비스가 환자를 위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기술적·관료적 목적만을 수행하는 쪽으로 점차 방향을 틀고 있음이 보였으니까요. 당시 그런 흐름을 막기 위해 등장했던 것이 제 전공 분야인 의료윤리와 의료인문학이었고요. 이쪽은 이쪽대로 열심히 노력을 기울였고 그 나름의 성과를 냈지만, 아직 의학과 의료 전체가 바뀌었다고 말하기엔 어림도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의학 및 의료에 대한 불만이 문제 제기로 터져 나오는 지점이 “필요 없는 치료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언가 치료는 받고 있는데 정작 환자가 원하는 것은 충족되지 않는다는 거죠.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밖에서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의료 영역에선 정보 비대칭성이 강하고, 진단과 치료의 지식은 여러 가지 이유로 상당히 독점적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지금 의료 시스템이 하는 일이 무익하다고, 잘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기 위해 선택하는 지적사항을 “과잉진료”라고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너무 거시적인 관점을 취한 것 같습니다만, 한편으론 이런 문제 제기가 있는 것을 단순히 비용 문제로만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잉진료라는 비난이 해당 의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의 분출이라면, 우리에겐 지금 변화가 필요한 문제가 여러 가지 주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가능해 보입니다. 치과의사 개인의 잘못이 아닌, 제도나 체계의 문제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지만, 극소수의 치과의사가 하는 일탈이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일도 아닐 수 있습니다.

 

사실, 이미 우리 또한 현재 의료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국가보험으로 대표되는 국가 주도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다른 한편으론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경영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서 겪는 문제를, 또 전문직으로서 치과의사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역할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저는 일하면서 듣게 됩니다.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대신, 현재 사회가 “과잉진료”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변화의 동력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고 실행해 나가면 어떨까요. 방법이 있냐고요? 그런 고민을 하기 위해 있는 분야가 의료윤리이니, 함께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청해 봅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