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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갱년기

스펙트럼

남자 갱년기는 30대 후반에서 40대에 찾아온다고 한다. 40대 이후 50대에도 찾아오고,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찾아온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만나봤다. 그 증상이… 무기력감, 만성 피로, 집중력 저하, 우울증, 불면증, 자신감 상실, 복부 비만, 근력 저하, 관절통 등 치과의사에게 해로운 것들만 잔뜩이다.

 

올해, 봄으로 진입하는 환절기에 몸이 많이 피곤하고 우울감이 심했다. 진료 중간 중간에 사무를 봐야하는데 글자가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직원에게 의존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저절로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아무래도 병원에 좀 다녀야 할 것 같아서 수요일 오전 진료를 비우고 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날 직원들에게 점심을 사 주면서, 마음 먹은 것을 공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한을 정한 바는 없지만, 한 동안 수요일 오전에 진료를 비우겠다고 직원들에게 말하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남자 갱년기는 그런 것이었다. 별안간 쏟아지는 눈물이라니… 별 감정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하던 말을 마저 하였다. 수요일 오전에 진료를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출근할 필요 없다고… 원장이 울어서 그런 거였는지, 수요일에 쉬는 게 좋아서 그런 거였는지 직원들이 “어…어…” 하며 많이 당황스러워했다. 남자가 우는 걸 보는 일이 아무래도 흔치는 않겠지… ‘갱년기라서 그렇다네… 허허허~.’

 

그렇게 수요일 오전을 비우고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정신건강의학과, 심리상담소,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통증의학과… 그렇게 내 중심으로 산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환자가 많은 지 적은 지, 매출이 많은 지 적은 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원래도 환자를 주소 위주로 치료했지만 이 시기에는 정말 주소만 해결해줬던 것 같다. 쉴 수 있는 모든 시간에 쉬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일찍 나가 밥 먹고 들어와 원장실에서 쉬었다. 진료가 끝나면, 보이는 직원 얼굴만 살짝 보고 퇴근해서 집으로 가 쉬었다.

 

당연히 직원들에게는 노터치였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파악하기에도 정신 에너지가 모자랐다. 내 할 일이나 잘 하면 다행인 상태라 누굴 터치할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아무 조건 없이 수요일 오전에 진료를 쉬기로 해서 그런지 분위기는 좋았다. 직원들이 알아서… 짜여진 시스템대로 치과를 굴려주었다. 나는 이거 하라면 이거 하고, 저거 하라면 저거 하고… 하라는 것만 간신히 하고 집에 가서 쉬기에 바빴으므로…

 

내가 건강할 때보다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 해주었다. 시키지 않은 일도 알아서 해 놓았다. 남자의 눈물 때문이었을까, 수요일 오전의 쉼 때문이었을까, 혹시 부채의식 같은 거라도 느낀 걸까… 아무튼, 시켜도 잘 안 하는 일을,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모습을 보아서 좋았다. 직원들끼리 사이도 좋아 보였다. 기대치 못했던 쉼이 관계의 문제까지 해결해 주는가? 다음에 혹시 구인할 일이 생기면 문구를 이렇게 적어야겠다. 원장님 골골하심. 아프다고 우셨음. 일 많이 못 하심. 흔치 않은 자리임…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