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마음에 닿은 길

Relay Essay 제2530번째

Hola~ Buen Camino~!!!

 

Sarria에서 Santiago de Compostela까지 120km를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오래전 신문에 연재됐던 산티아고 순례 여정을 읽고, 언젠가 꼭 한번 걸어보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환갑여행으로 꼭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야겠다는 비장한 선언에도 두말하지 않고 따라나선 남편과 함께, 배낭에 온갖 파스와 상비약을 두둑이 넣고 사이사이에 기대감과 설렘을 채워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주고받았던 말속에는 따듯한 마음이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좋은 여정이 되라며 힘차게 서로를 격려해주곤 했다. 덕분에 나는 힘을 내서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처음 순례길 여정을 준비할 당시에는 긴 시간을 걸으며 삶을 돌아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걷다 보니 어느새 무념무상의 시간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하늘을 가릴 만큼 높고 풍성한 나무들은 단순해서 가장 우아한 이끼 옷을 입고 있었고, 이끼들의 포자가 숲속 모든 나무와 돌 위에 저마다 다른 초록으로 닿아 있는 모습은 매일 20km를 넘게 걸어야 하는 순례길에서 발걸음을 종종 멈추게 했다.

 

또 이끼에 매달려 있는 아침 이슬은 숲속 나무 향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 덕에 숲길의 맑은 공기 속에서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정화되며 가벼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빼곡한 나무들 사이로 지나온 길과 걸어갈 길을 바라볼 때면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밝은 햇살이 마치 다른 세상으로 연결된듯한 신비함을 주기도 했다. 햇볕 쨍한 뜨거운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고, 그러다 비가 사정없이 내리는 변화무쌍한 날씨였어도 나무 향이 가득한 숲길은 힐링 그 자체였다.

 

갈리시아지방의 가을 아침은 걷기 알맞은 시원함이 있지만, 한낮으로 갈수록 뜨거운 햇볕에 목에 두른 스카프가 땀 얼룩으로 새롭게 염색되곤 했다. 쨍한 햇볕에 흐른 땀이 소금 가루가 돼 얼굴에 만져질 때쯤이면 숲속 카페가 보이길 기대하며 길모퉁이를 돌아보곤 했다. 때로는 에스프레소와 과일로 소소한 즐거움을 채우고 있을 사람들의 목소리에 마음이 먼저 달려가기도 했다.

 

순례길 속에 숨겨진 선물은 ‘나 자신’이라고 했다.

순례자를 상징하는 가리비를 배낭에 달고 물집 잡힌 발과 땀범벅의 모습이었지만,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감동으로 내 안에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날이 좋았다”라는 드라마 대사처럼 순례길을 걸었던 시간은 마음속에 아름답게, 촘촘히 채워져 갔다.

 

120km를 완주 후 순례 증서를 받고 대성당 앞 광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지평선과 맞닿은 하늘의 일출을 보며 순례길 첫 발걸음을 용감하게 내디뎠고, 계획했던 일정을 잘 마무리했다.

 

아름다운 순례길의 풍경들. 대성당에서 드린 순례자를 위한 미사. 그곳에서 느꼈던 뭉클했었던 마음. 향로미사(보타푸메이로)의 장엄함까지. 그 모든 것들로 꽉 채워진 여정. 오랜 시간 마음에 닿아 있었던 길을 걷고, 느끼고, 기억 속에 채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