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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치과의사가 되고 싶었을까?

Relay Essay 제2537번째

1982년 여의도에 첫 개원을 하고 40년을 지나 이제 ‘치과 개원의’라는 명패를 내려놓으려 합니다. 말 그대로 진짜 卒業을 하게 된 것이지요.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은퇴를 맞이하게 되었고 내가 속한 여러 모임에서 소회를 듣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져서 내 삶을 뒤돌아보는 기회가 됩니다.

 

저희 세대는 6.25 동란 중에 세계 최빈국에서 태어나 민족중흥의 책무를 띠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에 휩쓸려 올바른 인생의 지향점이 실종되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바람직한 삶이란 부와 명예가 아니라, 선배들이 나로 인해 평안하고, 동료들이 신뢰하고, 후배들이 그리워하고 존경하는지를 인생 평가 척도로 삼아야 한다’는 것에 마음 깊이 공감합니다. 돌이켜보면 인간의 품격인 禮와 義가 기본이 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공자님의 기준에는 한참 모자라겠지만 하루하루 진료실 일상에 최선을 다해왔던 한 사람의 개원의로서 ‘나는 어떤 개원의가 되고 싶었나’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나, 전문가 동료의 신뢰를 받는 치과의사

치과의사는 전문 직업인 중에서도 최고 전문직입니다. 이런 전문가들인 동료의 신뢰를 받으려면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나날이 발전해나가고 있는 의료기술을 공부하고 업데이트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학의 외래교수로 참여하면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들로부터 배우고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학회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전문가 동료들끼리 서로 임상경험을 주고받으면서 좋은 치료를 하기 위해 긴장하고 노력해왔습니다.

 

치과의사라면 다른 곳에 한눈파는 것보다는 전문영역에서 최고의 지식을 익혀 국민 구강보건 향상에 기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도 수학계의 난제인 카마이클 수를 해결한 수학자 다니엘 라슨은 선배 수학자들과 질의응답 사이트에서 이메일로 문제를 공유하면서 매일 두 시간씩 좋아하는 문제에 매달리고 항상 수학을 생각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즐거웠다고 합니다. 저도 선후배 동료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함께 일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둘, 함께 일하는 기쁨을 아는 치과의사

20년 전부터는 그 이전부터 꿈꾸던 개원의 생활과 치과를 만들어보기 위해 뜻이 맞는 5명의 선후배와 교정 단일과목으로 공동개원을 해왔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함께 머리를 모아 해결하면서 위로받았고 목표했던 바를 하나하나 이루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치과 개원의는 ‘혼자 하고 싶은 대로, 알아서 일하면 되는 직업’이었지만 인터넷과 SNS가 발달한 요즘은 단독 개원한 치과의사도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환자들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확인받고 싶어 하면서 내가 하지 않은 치료에 관해서도 설명해야 할 경우가 있고 내가 한 치료가 다른 치과의사들에게 평가받게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불필요한 왜곡이나 오해, 불신을 없애려면 함께 교류하면서 문제를 공유하고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냥 나 혼자만의 안위가 아니라 치과의사 전체는 물론, 결국 장기적으로 환자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방향인지를 고려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어려울수록 경쟁이 아니라 서로 격려하면서 함께 해결해 나가야 치과의사나 치과 치료에 대한 신뢰가 키워질 것입니다.

 

이러한 협업은 소속 공동체에 참가하고 봉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치협이나 지역 분회, 학회, 동문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여러 선후배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배웠습니다. 공자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보고도 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 앞의 눈은 내가 치우는 마음’으로 참여해왔습니다. 직업을 통한 사회봉사 단체인 로타리클럽과 나환자 치과 진료를 돕는 사단법인 구라봉사회 회원, 임원으로 봉사할 기회가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셋,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춘 품격 있는 치과의사

이제 대학입시 수능점수 상위 학생들이 치과대 지원을 선호하고, 치과의사는 선망의 직업이 됐습니다. 그러나 치과의사의 품격은 대입 점수나 매출액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직업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끼며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세상을 대할 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용으로 광고하며 최저가 치료를 한다고 해서 ‘좋은 치료를 하는 좋은 사람’들로 인정받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치과 치료나 치과의사 전체에 대한 불신만 키워 우리의 직업 환경만 악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이미 지난 경험으로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치과의사의 품격 유지도 동료 간의 신뢰에 중요합니다. 동료 간의 약속인 수가는 지키고, 광고는 진료 경험을 데이터화한 진료 결과물의 학술연구를 통해 치과 사회 전체의 인식을 개선하고 파이를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해야 합니다. 치과계에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시야를 넓혀 치아뿐만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는 치과의사가 되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공동체 사람들과 잘살아 봅시다. 그동안 제 개원의 인생에 함께 해주셨던 선후배님과 동료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