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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전문의 시험기

스펙트럼

전문의 시험이 끝나고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학부 시절 장사를 하기 위해 1년 휴학을 한 것 외에는 여태껏 공식적으로 소속이 없어진 적이 없었기에, 조금은 붕 뜬 기분입니다. 물론 육아라는 과제가 매일의 삶을 충분히 채워주고 있어 무료하지는 않습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오히려 근무할 때가 더 편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전문의 시험을 보기까지 육아를 도맡아준 아내의 희생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해 아이와 놀아주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다행히도 저를 비롯한 올해의 모든 치과전문의 시험 응시자는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다들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공부하여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을 치렀겠지만, 저는 특히나 더한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출근하여 진료와 공부를 병행하다가 퇴근 후 아이를 재우고 다시 나와 공부하는 형설지공의 삶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몰려오는 피로감에 효율은 떨어지고 후반으로 갈수록 부족한 부분이 자꾸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1차 시험은 객관식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긴장이 덜했지만, 문제는 2차 시험이었습니다. 매일의 준비는 부족한데 아이는 새벽마다 깨서 울고, 진료 배제 기간이라고는 하지만 진료실과 전혀 무관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머릿속에는 지우개가 들어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대체 이 머리로 치과의사 국가고시는 어떻게 통과를 했는지, 통합치의학과 전문의 시험은 어떻게 치렀는지 스스로가 의문일 따름입니다.

 

2차 시험 전날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는 기차부터 서울역 인근에 예약해 둔 숙소까지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을 정도로 제 마음의 불안은 커져갔고, 몇 장 되지도 않는 정리본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가 예방치과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겠구나 싶어 분주한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따뜻한 커피를 한잔 들고 창가에 섰습니다. 서울역이 내려다보이는, 2008년부터 서울역에서 노숙인 상담을 해온 제게는 무척 낯익은 풍경입니다.

 

지금의 숙소가 원래 공원이었던 곳에 지어질 때, 공원에서 지내던 이들이 갈 곳을 잃게 되어 아쉬워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커다란 구조물 뒤편에서 지내던 분의 별명이 신령님이었는데 자신은 승천하면 된다며 우스개를 주고받던 추억이 떠오르자 이상하게도 안도감으로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습니다. 마음이 놓여 글자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집중력이 좋아져 막상 암기했던 내용 전체를 한번 정리해보니 시험 준비 상태가 썩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전문의시험 준비 기간을 통틀어 가장 효율적인 시간을 보낸 뒤, 이른 잠자리에 들기 전 산책을 겸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풍경은 달라졌지만 그대로인 기억을 따라 한참을 걸었습니다. 때로 오래 알고 지내던 누군가의 빈자리를 지나칠 때면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기도하고 성호를 그었습니다.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졌습니다.

 

이제 이런 곳에는 오지 말라며 손길을 뿌리치다가도, 막상 강릉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말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던 이들과의 소중한 기억이 또 이렇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시, 치과의사이자 두 개의 치과전문의 자격을 가진 치과의료 전문가로서 거리 현장에서 활약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보아야겠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