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시장 어귀에는 작은 약국이 있다. 청년 약사님이 운영하는 약국이다. 여섯 평 정도의 작은 공간에 약국이 차려져 있다. 약들이 있는 공간, 약사님이 움직일 공간, 박스가 쌓여 있는 공간, 약국 손님들 몇 분이 서 있을 공간이 전부이다. 그런데 그 약국에 손님이 정말 많다. 약사님이 정말 쉴 새 없이 약을 파신다. 공간이 작은 탓에, 약사님의 동선이 짧기 때문에 약국이 돌아갈 수 있겠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어떤 이유로 약국이 잘 되는 것인가 궁금해 하던 차에, 약국에서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였다.
“어~ 이렇게 이렇게 달라고? 알았어~. 이거 하고 이거~ 이것도 넣어 줄게~. 이거는 오전에 먹는 거~ 이거는 저녁에~”
고분 고분… 청년 약사님의 반말을 듣고 있는 상대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였다. ‘와~, 약사님 신기하다. 굽실 굽실 친절을 베풀어도 모자랄 판에 반말이라니……’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약국에 손님이 뜸할 때를 기다려 어떻게 하신 거냐고 약사님께 여쭈었다.
약사님 말씀이…… 타이밍 같은 게 있다고 한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느낌이 온다고 한다. 반말을 하면 어르신이 좋아하실 것 같은 타이밍…… 그 타이밍에 반말을 잘 구사하면 어르신들이 자기를 손주 보듯 하는 분위기 같은 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약을 파는 짧은 순간에 만들어지는 유대관계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저 작은 약국이 이렇게 번성한 이유는 물론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는 순식간에 어르신의 마음을 파고 드는, 손주 같은 청년 약사님의 반말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치과에도 어르신들이 오시는데 내가 손주 마냥 반말하면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까? 반말 하는 것이 존댓말 하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치과에서 날이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워진다는 유대관계를 쌓는데 도움이 된다면 한 번 용기를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래된 지인 환자 중에 계속 반말을 하는 게 좋을 지 이제는 존대해줘야 할 지 고민되는 경우가 있는데, 잘 모르겠으면 그냥 반말을 하는 것이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에 반말 들어가며 진료를 받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존댓말이 나가면 뜬금없이 훅 들어오는 거리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냥 용기를 내서 반말을 해보고자 한다. “어머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여~ 날 봐~ 아~ 크게, 아~ 크~게~” 이왕 이렇게 된 거 연습도 해보자. 반말도 그냥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것도 다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타이밍이 왔을 때 잘 할 수 있다. 반말하는 내 모습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거울 속의 나를 마주보면서, 환자와의 유대관계라는 대의를 잊지 않으면서, 연습 또 연습~! 아자~!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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