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3 (토)

  • 맑음동두천 10.8℃
  • 구름많음강릉 8.1℃
  • 맑음서울 12.1℃
  • 맑음대전 12.0℃
  • 구름조금대구 11.2℃
  • 구름조금울산 10.2℃
  • 맑음광주 12.0℃
  • 맑음부산 13.5℃
  • 맑음고창 10.7℃
  • 흐림제주 11.9℃
  • 맑음강화 10.7℃
  • 맑음보은 11.1℃
  • 맑음금산 12.3℃
  • 맑음강진군 12.8℃
  • 구름조금경주시 9.5℃
  • 구름조금거제 12.6℃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사랑에 대한 단상

시론

우리 지부 회에서 한동안 회무를 하다가 이제 드디어 임기를 마쳤다. 시론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동안 능력도 부족한 사람이 부담스러운 임무를 해 내느라 숨찼지만 한편으로 가장 큰 수확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된 것이다. 그 사이 개인적으로도 큰일들을 조금씩 이뤄내면서 자존감도 좀 올라갔었다.

 

그러다가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갑작스러운 병이 찾아왔다. 그로인해 개원하고 처음으로 일주일간 입원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오전 진료를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어 원장실에 잠깐 앉아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는데, 갑자기 왼쪽 눈이 흐릿해졌다. 노안이 심해졌나 글자가 잘 안보이네. 잠시 후 직원들이 식사하라고 불러서 일어나려는데, 왼쪽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이게 뭐지. 직감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잘 알고 지내던 신경과 의사 동생에게 전화하여 증상을 말했더니 빨리 응급실에 가란다.

 

한 시간 반 동안 난생 처음으로 MRI를 찍고 나서 바로 진단을 받았다. MRI는 환자가 정말 힘든 촬영 장비라고 느꼈다. 일과성 대뇌 허혈증. 원인불명으로 갑자기 형성된 혈전이 뇌동맥 혈관을 폐색시켰다가 용해되어 재관류 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증상이었다. 또 나타날 수 있으니 일주일 정도 투약하면서 지켜보자고 입원하라고 하였다. 입원 중에 심장과 경동맥 검사 등도 하였지만 특별히 이상은 없었다. 한참 일하고 있을 시간에 난생 처음 병원에 입원하고 있으려니 애가 셋인데 이렇게 쉬고 있어도 되나 한편으로 불편하기도 했다.

 

지금은 다행히 후유증이 안 남았고, 매일 항혈전제를 먹고 지낸다. 이 일이 있기 한 달 전 내시경도 하고 건강 검진을 받았었는데, 큰 이상이 없어서 건강에는 아직 자신이 있었던 참이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요 몇 년 동안 나는 안 힘든 줄 알고 지냈었는데, 사실은 힘들어서 내 몸이 반응을 했나 싶었다. 나는 이제 건강에 대해 겸손해졌다.

 

건강 문제를 겪으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얼마나 컸었는지 새삼 감사함과 그들의 따뜻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날 휴대폰이 바로 연결되어서 제 때에 신경과 동생의 정확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고, 우리 치과 실장님이 빨리 진단받을 수 있도록 병원 가는 길에 모든 조치를 다 해 주었다. 지인들도 많이 걱정해 주었다.

 

혹자는 삶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그 속에서 깊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이것을 가장 잘 실천한 인물은 예수님이다. 하버드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세계 최장기 성인발달연구 프로젝트를 이끈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오랜 세월 동안의 연구 끝에 “행복은 사랑을 통해서만 온다. 더 이상은 없다.”라고 못 박았다. 철학자 버트렌드 러셀은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행복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자기 내면이 아니라 외부 세계에 대한 폭넓은 사랑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이 추구하는 궁극의 끝도 사랑이라고 들었다. 너무 단순한 사실이지만 행복한 삶의 전제조건은 결국 사랑이다.

 

나는 매일 아침 차로 한 시간 가까이 되는 출근길에 백 명 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기도를 한다. 기도는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다. 그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를 힘들게 했거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분들은 내가 그들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른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편하다. 어쨌든 내 진심을 담아서 계속 하려고 한다.

 

최근에 갑자기 부탁할 일이 생겨서 아는 형님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형님은 암에 걸려서 몇 차례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의 근황도 알려주고, 매일 그 형님을 위해 기도해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정기검진에서 양호한 결과가 나왔다면서 그 형님에게서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기도해줘서 고맙다고. 마음속으로 사랑이 전달되었나 보다. 당연히 나는 그 형님 기도를 평생 해줄 작정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인 활동”이며,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을 잘하기 위해서는 기술(art)이 필요하다고. 항상 기술이라는 번역이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art는 높은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수련이나 연마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입원 중에 사랑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책을 다시 읽었었다. 앞으로도 평생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 텐데 어떻게 하면 그 사랑을 잘 할 수 있을까 알고 싶었다.

 

프롬은 계속해서 말한다. 인간은 본래 가지고 있는 고독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고 세상과의 합일을 끊임없이 추구하는데, 그 합일을 이뤄내기 위해서 사람들은 많은 것들에 빠진다. 하지만 성숙한 사랑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합일이 일어난다. 성숙한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체적인 인격을 발달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짧은 글에서 내가 감히 사랑을 단정할 순 없지만, 성숙한 사랑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전 생애에 걸쳐서 사랑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오류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의 모든 삶의 과정 속에서 나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주는 아내와 세 자녀들에게 감사하다. 끝으로 부족한 글을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인사드린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