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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버지의 5월

Relay Essay 제2553번째

어느덧 고희에 이르셨지만, 작은아버지는 나에겐 아직도 조카에게 줄 소년잡지를 들고 골목 어귀를 들어서는 맑고 하얀 청년이다. 삼촌이 갑자기 작은아버지가 됐을 때 모르는 여자에게 삼촌을 뺏겼다는 생각에 큰 상심에 빠지기도 했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작은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와 공감이 있다.

 

5월 18일 그날의 광주에서, 의과대학 4학년이었던 작은아버지는 고등학교 동문 체육대회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고 계엄군이 온 도시를 유린한 그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보통의 하루를 보내다 행방불명된 다른 무고한 젊은이들의 가족들처럼, 나의 아버지는 당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동생을 찾으러 자전거를 끌고 나가셨다. 그런 아버지 뒤에 남겨진 식구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까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어머니가 재직하던 학교에, 작은아버지가 국군통합병원에 후송되어 있다는 연락이 온 것은 며칠이 지난 후였다. 정신이 반쯤 나가 달려간 아버지가 마주한 동생은, 췌장이 파열되고 3000cc의 피를 흘린 뒤 수술받은 중상자가 되어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무자비한 계엄군의 군홧발에 배가 짓이겨져 그리된 것이었다.

 

작은아버지는 다른 백여 명의 부상자들과 무려 한 달 동안 국군통합병원의 한 병실에 갇혀 있었고, 조선대병원으로 이송되며 다행히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몸을 좀 추스를 수 있게 되자 병실에서 의료봉사를 했다고 한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작은아버지는 돌려받은 목숨 빚을 평생 사회에 갚아 나가기로 결심하셨고, 내가 아는 한 그렇게 평생을 사셨다. 5.18 생존자들에게 무료로 진료해주고 계셨다는 것도 우리 식구는 작은 기사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작은아버지는 베풀 수 있는 것이 의술밖에 없음을 늘 안타까워하셨다.

 

내 어린 눈에 이런 작은아버지는 소위 ‘간지’라는 것이 폭발하는 의사였다. 작은아버지의 삶에 홀딱 반해 의대를 지망했지만, 꿈은 꿈일 뿐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급급한 ‘생계형 치과의사’가 된 나의 모습에 반성하기 바쁜 현실이다. 내 꿈의 좌절에는 예상치 못한 작은아버지의 만류도 크게 한몫했다. 상황은 이렇지만, 의료인으로도, 한 사람의 어른으로도 너무 존경하고 닮고 싶은 작은아버지를 살짝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마음만은 여전하다.

 

가족 앞에서도 본인 이야기라고는 해본 적 없는 작은아버지가 평생에 딱 한 번 수줍게 자랑한 것이 있는데, 바로 영화배우가 됐다는 것이다. 5.18 다큐멘터리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신 것이었다.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모습에 온 식구가 즐거워했지만, 작은아버지의 영화 후원 사연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작은아버지는 당신의 선행을 입 밖에 꺼낸 적도, 아니 그것이 선행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다.

 

여전히 광주 사람들에게 5월은 직접적으로 아프고 쓰라린 시간이며, 그 아픔을 동료 치과의사들이 한 번쯤 공감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이렇게나 사랑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나의 작은아버지가 5월 18일 이후 처음으로 다시 수술대에 누워야 하는 암 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삼촌은 힘든 투병 중에도 40년이 된 낡고 허름한 동네 의원 문을 열고 환자들을 만난다. 이 글을 보고 많은 이들이 그의 쾌유를 기원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1980년의 맑고 순수한 젊은 그를 하늘이 도와 살아났듯이, 평생을 당신보다 다른 이들을 걱정하고 배려하며 살아온 2023년의 작은아버지도 하늘은 어김없이 도와줄 것을 믿고 또 바란다. 그렇게 다시 건강히 돌아와서, 아직도 그 앞에서는 철없고 어린 조카이기만 한 나의 응석을 받아 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작은아버지의 5월은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