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하면 무엇이 생각 나십니까? 식탐이 남부럽지 않은 저는 돼지 껍데기가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하지만 껍데기의 사전적 의미는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 혹은 알맹이를 빼내고 겉에 남은 물건입니다. 돼지 껍데기는 피부에 해당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돼지 껍질이 올바른 표현이겠지만, 돼지 껍데기라는 명칭이 일반화 되어 버렸습니다. 진짜 껍데기는 소라나 조개, 아니면 달걀이 생각나야 맞습니다. 그러고보면 저것들도 다 먹을 것이긴 하네요.
2015년부터 45개의 스펙트럼을 썼습니다. 제 안에 있는 진솔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고 뭔가 의미 있는 글을 남기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다 빈껍데기 같은 글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변명을 할 수도 있고 핑계를 댈 수도 있고 그때 그런 말을 했던 이유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았을 때, 내로남불일 뿐 정말 진정성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겉바속촉은 음식에서는 참 좋은 표현이지만, 저의 겉과 속이 너무 달라서 제 자신조차도 속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제 삶이나 가치관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은연중에 표현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0대 초반에 교회를 몇 년 열심히 다니고 나서 든 생각이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척하며 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의 성향, 성격에 따라서 그게 어려운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했다는 자체가 제가 정말 표리부동한 사람이라는 것의 반증일 수도 있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인 척하는 것은 저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였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짜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불가능한 일 같습니다.
운이 좋아서, 처음 시작해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랑이아프니”라는 사랑니 발치 치과를 2013년에 시작한지 이제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 지면을 빌어 응원해주시고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싶습니다. 그저 재미있어서 그리고 조금 자신있어서 시작했던 것이지 특별한 소명감을 갖고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체력이 많이 약해져서 환자 수는 좀 조절하고 있지만, 은퇴할 때까지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아직 변함없습니다. 특이하다면 특이한 이력으로 치의신보와도 연이 된 것 같고 여기까지 오게된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쓸 내용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A4 한장을 채운다는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별한 주제조차 없어서 그때그때 생각해야 하는 창작의 고통도 서태지만큼은 아니겠지만 분명 있었습니다. 좋은 주제가 생각나더라도 10개 정도의 문단을 만들어내지 못해 지워버린 글도 부지기수입니다. 너무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그저 몇 문장으로 밖에 표현이 안된다면 하나의 글로 만들 재주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80년대 팝송 중에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영상이 글을 말살시키고 있는 시대가 되어버리지 않나 생각합니다. 글은 아직도 많이 돌아다니지만 영상에 점점 밀리는 양상입니다. 페이스북에는 40대 이상의 아저씨들만 잔뜩 있고, 젊은이들은 인스타그램에만 있는 것도 세대간의 생각하는 매커니즘이 완전히 틀린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무언가를 배우려면 책을 정독하려고 했던 시대는 지나고 유튜브에서 너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로 해볼 수 있겠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페이스북에 제 치의신보 글을 올리면서 많은 사람이 읽으시길 원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요새 말로 “관종”이라고 하지요. 남들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사는 척하지만, 어쩌면 노력하고 싶지 않았을 뿐, 관심을 받고 싶은 욕망은 어마어마했던 것 같습니다. 외로움, 질투, 열등감 등 인간의 나쁜 본성들에 너무나도 충실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알맹이를 채우러 떠납니다.”라고 하면 멋있겠지만, 그렇기보다는 깊은 내면을 보는 순간 더 이상 글을 쓸 자신이 없을 뿐입니다. 그동안 마감시간도 제대로 맞춰드리지 못해 속 썩였던 관계자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글 잘 읽고 있다는 말씀은 정말로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모두 행복하세요.
아주 어렸을 적에,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쯤에 왜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영화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단순합니다만,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의미없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습니다. 아니,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 가치가 자극적인 사람들의 삶에 미치지 못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극적인 빈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요.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