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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구강건강 불평등

스펙트럼

예방치과를 전공하고 전임의사로 근무를 이어가고 있는 제 주된 업무 중 하나는 공공영역의 진료 수행입니다. 강원권역 장애인구강진료센터 겸직 근무부터 사회취약계층 아동·청소년 구강건강증진사업(이하 공공진료)에 이르기까지의 크고 작은 역할이 그 구체적인 내용인데, 특히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아동·청소년 대상 공공진료는 제가 예방치과 전공자로서 자리를 지켜온 데에 큰 동기부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아동·청소년 대상 공공진료의 주된 내용은 현재 몇몇 지자체 또는 건강보험공단의 시범사업으로 시행중인 아동치과주치의제도의 내용과 유사합니다. 주기적인 예방중심 진료 제공으로 치아우식증을 비롯한 구강질환을 예방 또는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하는 것인데, 차이가 있다면 사업 대상이 강릉지역 드림스타트와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동·청소년으로 제한되어 대개는 사회취약계층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진료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언급한 이 차이점을 조금 확장하자면, 우선 대부분의 아이들이 개별적으로 보호자와 함께 내원하기보다는 이용 중인 아동기관의 담당자와 노란색 승합차에 탑승하여 한꺼번에 내원합니다. 이때 공공진료는 하루 두 시간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많게는 열 명까지 검진과 예방진료를 제공하고, 치료를 위주로 하는 날에는 최대 대여섯 명까지 약속을 잡습니다.

 

문제는 치료 계획상 필요한 내원 횟수가 같은 기관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매우 많은 아이의 경우에는 기관에서 아이를 일일이 데려오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보호자 동반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공공진료 대상 아이들에게는 종종 어려운 일이기도 해서, 단순히 일이 바빠 아이를 챙기지 못한다고는 보기 어려운, 한부모 혹은 조손가정의 복잡한 속내가 숨겨져 있고는 합니다. 치과의사, 치과위생사, 원내생, 행정직원이 한 팀으로 진행되는 공공진료 과정 가운데 ‘엄마’ 또는 ‘아빠’와 같은 단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대신 ‘보호자’ 라는 단어 사용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관의 정기적인 일정에만 내원하고 보호자의 인솔 없이 정작 필요한 치료는 누락된 채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아이들의 구강건강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구치 상실은 예삿일에 전치부 순측 치경부 우식증이 신경치료를 필요로 하는 수준까지 심화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재 내원이 어렵다는 판단에 기관과 동반하는 날에 어떻게든 많은 치료를 제공하고자 하지만 보호자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거나 치과 공포증의 이유로 이마저도 쉽지 않기가 태반입니다. 궁여지책으로 고농도 불소치약 견본품이나마 손에 들려 보내며 관리를 당부하지만 얼마나 효용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점차 악화되는 사회 불균형은 각종 지표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아동 구강건강 불평등 또한 예외가 아님을 얼마 전 공개된 2021~2022년 아동구강건강 실태조사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름의 최선조차 초라할 뿐인 제 역량으로나마 바위에 달걀을 던져보지만, 바위는 닳거나 깎일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깨진 달걀과 흘러나온 노른자가 바위를 뒤덮으면 무언가라도 변화가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저 기대할 따름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