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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스펙트럼

매주 목요일은 휴진입니다. 여기에 대략 한 달에 한 번, 대개 목요일부터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까지 3박 4일을 휴가로 보내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광복절 휴일을 끼고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강원도에서 4박 5일 휴가를 보내고 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구강악안면외과 치과의원을 개원하고 있습니다. 치과의사, 구강악안면외과 의사로서 하루종일 집중, 집중, 초집중 상태로 진료해 나가다 보면 특히나 체력이 별로 좋지 않은 저로서는 솔직히 지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정말 쉽지 않습니다.

 

치과의사, 구강악안면외과 의사는 진료의 특성상 비가역적인 시술, 수술이 많기 때문에 진단에 있어 실수가 있으면 안 될 것이며 치료에 있어 실패가 없어야 합니다. 따라서 평소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초집중 상태를 유지하면서 또한 여유를 잃지 않아야 하기도 합니다. 환자가 많아질수록 체력 관리에 힘쓰는 기본적인 이유입니다.

 

저는 진료 시간을 오전 3시간 그리고 오후 4시간, 비교적 짧게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이유 역시 너무 오랫동안 환자를 보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라지만 매일매일 그런 삶을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이없는 실수는 대개 너무 오래 환자를 보거나 너무 많은 환자를 봤을 때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 시험 기간과 졸업 후 인턴, 그리고 레지던트 1년차 때에는 체력의 200퍼센트 이상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레지던트 2, 3년차 때에는 100~200퍼센트 정도를 사용했던 것 같은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수련을 마치고도 몇몇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는 다시 또 체력의 200퍼센트 이상을 사용했던 적이 몇 차례 있었지만(세미나 준비, 개원 준비 등) 가능하면 모든 체력을 고갈시키지 않고, 최소한의 활력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수련의에서 봉직의로, 봉직의에서 개원의(원장)로 그 역할이 달라지면서 직접 백퍼센트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은 점차 늘어났고 분명,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A healthy mind in a healthy body)이 깃들기 때문입니다.

 

실로 그렇습니다. 오래 가려면 그래야 합니다.

더불어 아빠로서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책임도 점차 늘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아내에게 온전히 맡겨 둘 수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커 갈수록 아빠의 역할,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점차 늘었습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여자를 제가 스스로 선택해 제 주장으로 결혼했고, 지금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3i(쓰리아이, 세 아이) 대장’입니다. 스스로 가장이라고 생각하는, 지극히 가부장적인 남자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의사요, 원장이지만 가정에서는 남편이요, 아빠요, 가장입니다. 둘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금 여기, 저에게 주어진 모든 책임과 의무,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 집중도 필요하지만 휴가도 필요합니다. 200대 0, 100대 0인 적도 있었지만 현재 대략 70대 30의 밸런스를 유지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일과 가정 모두에서 의무와 휴식의 밸런스는 대략 7대 3입니다.

 

휴식, 휴가는 소위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입니다. 창의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떠나고... 결코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내 인생을 사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스스로 바르게 가다듬어져야 비로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회에서 요구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원장으로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생각 이상으로 생산적이며 또한 창조적인 활동입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에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저는 늘 삶과 죽음에 대하여, 개인과 사회의 조화에 대하여 그리고 생명과 우주의 신비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일과 여가에 대하여, 여행과 인생에 대하여, 역사와 미래에 대해 생각합니다.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서 멀리 바라보고자 책을 보고 영화를 봅니다. 없는 여가, 없는 휴가를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보고 읽은 내용을 개인 블로그에 내용을 정리해서 내 생각을 덧붙이며 숙고하다 보면 무엇인가 새로운 생각들이 꿈틀대며 올라옵니다. 이것은 재창조(recreation)의 과정이었습니다. 남다르며 창의적인 생각은 곧 나의 진료와 경영에 그대로 반영되어 현실이 됩니다. 저는 일반 치과 진료를 전혀 하지 않고 오직 구강외과 소수술, 악안면외과 대수술만을 시행하는 치과의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쁜 와중이라도 여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블로그를 통해 나름 꾸준한 읽기와 쓰기를 시행한 결과 ‘선택과 집중’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근관치료, 보존치료 중단을 선언했을 때는 주변에서 선후배 원장님들께서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보철치료, 임플란트 중단을 선언하자 많은 분들이 대부분 크게 걱정하시더군요.

 

모든 선택에는 유불리, 장단점이 있겠지만 불리한 점, 단점은 줄이고 보다 유리한 점, 장점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정말 ‘사랑니 발치’와 ‘양악수술’만 시행하고 있습니다. 단발성으로 치료가 종결되는 수술만으로 치과를 운영하게 되니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쉬자는 결정이 쉬워졌습니다. 지금 비로소 일과 가정 모두에서 일과 휴가, 의무와 휴식의 밸런스가 7대 3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오늘의 진료를 마치고, 오늘의 일과 의무를 모두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또한 설레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내일 새로운 날이 밝을 때까지,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지금 제 앞에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이런 삶을 살기 위해 그런 삶을 살았던가 싶습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