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진료하다 보면 가끔 유튜브를 보고 와서 치과 진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환자가 있습니다. 틀린 이야기가 아니면 다행이지만, 가끔 이상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어서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무조건 무시하자니 그 자체로 잘못인 것 같고, 그렇다고 듣자니 너무 이상한 쪽으로 빠지니까요. 이런 경우에 관한 윤리적 접근법이 있을까요? 익명
치과를 포함하여 의학에서 환자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곤 합니다. 아무래도 치료 행위를 하는 사람이 의료인이고 환자는 치료받는 사람이어서 그럴 텐데요. 환자는 의료진의 지시에 순응해야 한다거나,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비대칭적 의학 지식을 전제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순환 논리로 작동합니다. 수동적이라서 의학 지식을 모르는 위치에 놓이는 것인지, 의학 지식을 모르기 때문에 수동적 위치에 놓이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건강과 질병에 관련된 지식을 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수 있을까요. 또는, 그래도 될까요. 일단, 당위적인 측면에선 이미 이전부터 환자의 능동적인 참여를 강조해 온 선언들이 존재합니다. 1978년 세계보건기구의 알마아타 선언(Declaration of Alma-Ata)은 시민이 “보건의료 계획과 수행에 개인적, 집합적으로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라고 밝혔습니다. 이것은 시민들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보건의료 계획에 관여할 것을 요구하며, 따라서 시민은 자신에게 주어질 보건의료와 관련한 지식을 가져야 할 권리와 의무도 진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세계보건기구의 1992년 건강증진 환경을 위한 순스발 선언(Sundsvall Statement on Supportive Environments for Health)은 “지역사회와 개인이 교육과 역능강화(empowerment)를 통하여 건강과 환경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라고 적고 있어요. 여기에서 역능강화란 개인과 집단의 참여 활동에 있어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개인의 보건의료적 지식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도를 세계보건기구는 명확히 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 일반인과 환자가 자신의 건강과 질병에 관한 지식을 추구하는 행위는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 개인이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한 건강 추구 행위를 하지 않고 적절한 보건의료 관련 행위를 쫓게 되는 것이 그런 예지요. 의료진 쪽에서 보아도 환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고, 이들이 현명한 선택을 내릴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사회 전체로 보아서도 보건의료 비용과 자원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의 건강 관련 지식 확장은 매력적인 추구가 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런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의료진이 환자 교육에 시간을 쓸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며, 그마저도 수가 체계에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여기에 노력을 들일 동인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환자가 제대로 내용을 알고 오리라고 기대하기도 힘들고요. 따라서, 저는 이런 접근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진이 보건의료 지식을 환자에게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좋은 보건의료 지식을 추구할 필요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관련하여 최근 강조되고 있는 개념으로 헬스 리터러시(health literary)가 있습니다. 리터러시는 요새 “문해력”이라는 표현으로 많이 옮겨지고 있지요. 최근 학생들이 한글 단어를 몰라서 글을 잘 읽지 못하므로, 이들의 이해력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 이런 헬스 리터러시는 의료/건강정보이해능력으로 번역되었으며, 보건의료 교육의 중요성을 강요하는 담론의 형식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환자나 시민이 보건의료 정보를 직접 탐색하는 영역보다는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강조되었으며, 이에 따라 의료진, 병·의원, 보건 당국이 이들을 대상으로 의료 지식이나 정보를 효과적으로 교육하는 방법에 관한 논의를 강조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 특히 최근 유튜브의 활성화와 언어 인공지능의 발전은 이런 헬스 리터러시 논의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반인과 환자들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유튜브 영상으로, 심지어 책을 써서 자신의 질환 경험을 공유하며, 이 과정에서 보건의료 정보의 탐색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보건의료 지식의 범위 또한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해부생리학 또는 분자생화학에 기초한 생물학적 지식의 틀 위에 쌓인 임상의과학적 지식이나 역학에 기초한 보건학적 지식만이 보건의료 지식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것을 넘어, 질병 과정에서 환자의 경험, 다수에게 닥친 질병의 사회적 이해 또한 중요한 보건의료 지식의 원천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는 이런 변화에 불을 댕기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제 사회는, 의료인만이 보건의료 지식을 독점하거나 의료인으로부터만 보건의료 지식이 나오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 전문가로서 치과의사의 역할 또한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지식만이 보건의료에서 유일하게 통용되는 지식이라는 생각은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치료자로서 우리는 생물학적 질병에 대한 앎은 지니고 있으나, 질환의 개인적, 사회적 경험과 과정에 대한 앎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단일한 지식 공급의 통로에서 벗어나, 보건의료 지식 및 정보와 관련하여 치과의사의 책무는 일반인이나 환자들이 더 나은 지식과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더 나은 지식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소통하며, 공유할 수 있는 정보를 함께 구축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유튜브나 언어 인공지능에서 보건의료 정보를 듣고 와서 그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환자를 그저 틀린 지식에 현혹된 자로만 가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오히려, 그 정보가 환자에게 왜 필요한지, 어떤 경로로 그 정보를 얻었는지, 그 정보가 교차 검토 가능한지, 우리가 이 정보를 통해 함께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더 나은 정보를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이 살펴주어야 할 동료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환자는 보건의료 정보를 탐색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이때 말씀드린 헬스 리터러시의 새로운 해석이 중요하게 작동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인과 환자들이 정보 탐색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지금 의료 전문가의 책무라면, 일반인의 헬스 리터러시에서 특히 정보 탐색과 관련한 활동과 추구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시급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이전의 의료/건강정보이해능력과 구분하여 “보건의료 문해력”이라고 부르려 합니다. 보건의료 문해력은 환자와 의료인이 함께 보건의료 정보를 적절히 탐색하는 능력, 또는 그 행동을 의미할 거예요. 예컨대, 임상에서 환자의 구강 관리 전략을 장기적으로 상담, 지원하는 임상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계신 선생님은 보건의료 문해력과 관련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