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진 얼굴, 꼬투리를 잡으려는 듯 쉴 사이 없이 두리번거리며 예민함과 까다로움, 신경질을 담은 눈, 불만을 끊임없이 쏟아낼 듯 움찔거리는 입.
몇 해 전 나를 심하게 괴롭혔던 환자의 첫인상이다. 우리는 진료실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개원 10년차가 넘으면 멍석을 깔아도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겉모습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이 환자의 진료 만족도 내지는 결과와 연관성이 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외적인 정보가 주는 선입견의 함정에 빠져서는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해 줄 수 없다. 그러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의 한 단초로 우리가 겉모습에 집착하는 이유를 찾아가보고자 한다.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동화 속에는 아름다운 공주와 멋진 왕자가 자주 등장했다. 아름다운 외모의 주인공은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는 엔딩은 마치 한 세트 같았다. 콩쥐와 팥쥐, 신데렐라, 백설 공주만 해도 그렇다. 신데렐라의 나쁜 언니들, 백설 공주를 괴롭히는 여왕 등 주인공의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조연들은, 하나같이 못 생기고 못된 성격으로 그려졌다.
동화 밖의 세상은 다를까?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았고, 가르치지만 평범한 외모의 범주 안에 들어 있는 대부분의 우리는 예쁜 친구들의 타고난 권력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이 좀 더 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내면의 아름다움이나 실력보다 미모에 투자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의 외모를 가꾸려는 강한 욕망을 먹이로 화장품 산업과 성형 산업은 거대한 규모로 커가고 있다.
외모의 아름다움과 육체를 예찬하는 문화적 기반은 고대 그리스에 원류를 두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체야말로 행복한 삶의 토대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대의 예술가들이 대리석을 갖고 했던 일을 오늘날에는 성형외과 의사들이 생체를 갖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더해 매스미디어가 외모지상주의에 끼치는 영향은 다른 어떤 것보다 강력하다.
1990년에 상영되었던 <귀여운 여인> 속의 백만장자와 가난한 아가씨와의 결혼은 현실에서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도 이 영화는 전 세계의 많은 여성들에게 신데렐라 신드롬을 심어주었다. 이것은 여성들이 몸치장에 많은 시간과 돈을 쓰게 부추겼다.
과학은 우리가 왜 지금의 우리가 됐고, 왜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내고 있다.
이제 우리가 겉모습에 집착하는 이유를 진화심리학으로 접근해 보고자한다.
진화심리학에서 인간의 마음은 수백만 년 전 수렵-채집 생활에서 겪어야 했던 문제들을 잘 풀도록 진화했다고 한다. 우리의 현대적인 두개골 안에는 아직도 석기 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 그로인해 우리의 마음은 진화 역사에서 처음으로 접하는 생소한 문제들에 대해 여러 가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를 합칠 최고의 짝을 확인하기 위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한다.
신체적 특징은 우리가 짝을 판단할 때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단서이며 이것을 통해 상대방이 가진 유전자의 상대적 질을 조잡하나마 신속히 판독할 수 있다고 한다.
다윈의 ‘성 선택’이라는 개념에 따르면 생명체들은 순수하게 이성을 향해 자신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쓸모없어 보이는 특성들을 과시한다고 한다.
사람도 성 선택에 영향을 주는 특성들이 있다.
빌 설리번의 저서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에는 남녀 공통으로 얼굴과 몸이 대칭적이며, 맑고 투명한 피부, 건강해 보이는 하얀 치아, 반짝이는 눈동자,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을 나쁜 유전자를 갖지 않고 감염이 없다는 표식으로 받아들였으며, 이들과 짝을 맺고 싶어 한다고 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남성이 잘록한 허리의 여성을 선호하는 것은 생식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몸매이기 때문이고, 여성의 큰 가슴을 보물 상자처럼 대하는 것은 원초적 무의식이 큰 가슴을 자기 자식에게 영양을 공급할 사람이 갖추어야할 중요한 자질인 좋은 건강과 활력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이라 추정한다.
반면 여성이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있는 남성에게 더 관심이 많은 이유는 그런 자원이 자신과 자식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특성을 평가하려면 외적인 판단을 할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럼에도 여성은 남성보다 번식의 기회가 적기 때문에 짝을 선택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추정한다.
사회적 진보가 진화적 지상과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음에도 많은 사람이 여전히 견고히 자리 잡은 고정 관념 속 패턴에 따라 행동한다. 짝을 고를 때뿐만 아니라 진료실에서도 겉모습에 집착하는 사람은 진화가 남긴 이런 오랜 흔적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의 유전적 유산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고 그것을 흔들고 깨는 것은 아주 어려울 수 있다.
과거 우리 선조들에게는 이런 접근 방식이 효과적이었겠지만 이제 우리는 짝을 고를 때 이기적 유전자의 욕망을 뛰어넘어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판단할 수 있는 머리를 가졌다. 이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고 본능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생각하는 인간인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질일 것이다.
테드 창의 소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에는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얼굴에 대한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칼리아그노시아(아름다움을 인식 못하는 실인증)를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것에 관한 찬반 의견들이 인터뷰형식으로 전개되어 있다.
물리적인 어떤 것에 의해 외모를 판단하는 능력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불평등과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외모 지상주의에 분노를 느끼는 것도, 아름다움을 보고 매혹을 느끼고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어찌 보면 본능과 이성 사이의 치열한 줄다리기의 결과물일 수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힘에 관해 알아가려는 노력과 관심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우리의 본성에서 육체적인 선택 부분을 줄이면서, 몸과 마음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우리의 선택이 좀 더 완전함에 가까워질 수 있게 이끌어 줄 것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라고 말했던 어린 왕자가 별 속에서 웃음소리를 내며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 이라고 조용히 속삭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