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요새 주변을 둘러보면 다 디지털 이야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만해도 일단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놓지 못하니 할 말은 없긴 하지만요. 치과나 의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디지털 치의학, 디지털 헬스케어, 스마트 헬스케어, 단어도 워낙 많아 헷갈리기까지 해요. 과학기술의 발전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정말 좋은 일인지 갸우뚱해지곤 합니다. 사생활 침해, 보안, 접근성, 불평등 이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 한편으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디지털 헬스케어 자체가 정말 좋은 걸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익명
보건의료의 디지털화라는 거대한 흐름은 이미 우리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어떻게 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미 하나의 산업을 이룬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은 관, 산, 학 모두가 주목하여 너도나도 뛰어드는 상황이고, 저 또한 그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치과계도 마찬가지지요. 디지털 덴티스트리라고 부르는 영역, 이를테면 CAD/CAM, 3차원 안면 사진 및 CT 기반 진단, 영상치의학이나 구강병리학의 영상 진단, 동영상 및 애플리케이션 기반 환자 구강위생 교육 및 행동 지원 등은 이제 익숙한 주제요 진료에서도 충분히 활용되는 영역이 되었습니다. 특정 업체에 대한 소개가 될까 저어되어 자세히 언급하기는 그렇습니다만, 최근에도 임시 치아 관련한 새로운 접근에 관한 내용을 듣고 놀랍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디지털 헬스케어를 떠받치는 것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미 2010년대 초부터 『청진기가 사라진다』,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 『딥메디슨』과 같은 저서로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이 바꾸어 놓을 보건의료의 모습들을 제시해 온 에릭 토폴과 같은 이가 제시해 온 디지털 헬스케어의 서사가 대표적이지요. 네, 저는 그것을 서사,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디지털 기술이 보건의료에 가져올 혁신과 민주화를 통해, 환자들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약속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지요. 주인공은 토폴 자신과 같은 의사-과학기술자, 배경은 현재의 보건의료 환경, 상대는 정체되어 있고 위계적이며 여러 문제를 노출하고 있는 현재의 의학, 그로부터 구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주권을 빼앗긴 환자. 여러 과학기술의 사례와 논의로 이것이 사실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결론부에 제시해야 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하나의 서사 구조에 의존하게 됩니다. 우리가 익숙한 이야기의 흐름을 상정하고, 그에 맞추어 지금 보여주는 사례나 상황이 변화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디지털 헬스케어의 서사는 문제 해결의 서사요, 기술 혁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황금 열쇠라는 낙관을 자신하는 낙관주의적 서사입니다. 토폴의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할 것이므로, 그 자체가 사실이냐 아니냐, 그럴듯하냐 아니냐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겁니다. 문학에서 흔히 말하는 핍진성, 내적 일관성의 관점으로 볼 때 디지털 헬스케어의 이야기에는 아무런 흠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이야기가 전부일까요? 기술 발전,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지금 우리가 보건의료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여, 다음 세대의 의학 또는 미래 의학으로 넘어가는 역할만을 수행할까요? 다른 일들은 벌어지지 않을까요? 또, 그 이야기를 통해 이득을 보는 이는 누구일까요? 디지털 헬스케어 이야기가 구원 대상으로 상정한 환자들만 이득을 볼까요, 아니면 더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이 숨겨져 있는 걸까요?
저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해결 서사가 뒤에 숨기고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이미 우리의 경험을 보아도 충분합니다. 예컨대, 전자 의무기록이나 디지털 영상을 볼까요. 이전 세대의 병원을 기억하시는 선생님들께선 잘 아시겠지만, 종이와 필름의 시대엔 의무기록을 찾는 것 자체가 일이었습니다. 직접 환자에게 관련 내용을 들은 의료인이 아니라면, 일부러 특정 환자의 의무기록을 찾아서 외부로 누출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전산화되면서 의무기록 누출과 그로 인한 환자 피해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환자들은 이제 자신의 정보가 병원에서 안전히 유지되고 있는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을지 염려해야 합니다.
병원 또한 기록 보관 및 보안을 위해 더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전자 의무기록과 디지털 영상은 빠른 환자 자료 확인과 자료의 체계적 정리라는 이점을 통해, 이전 시대 실물 의무기록이 지녔던 번거로움을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염려와 해킹에 대한 두려움이지요. 기술이 가져온 이득과 문제의 총합을 따져본다면, 글쎄, 전자 의무기록이 무조건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런 식의 전자 시스템 관리는 결국 의무기록사들이 하던 일을 대부분 컴퓨터로 옮기고, 컴퓨터 시스템을 관리하는 외부 인력들로 이를 대체하게 만들었지요. 물론, 정보 교환의 속도 증가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질적 가치를 지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규모 정보의 세계, 빅데이터 시대에 우리는 다른 분석들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통해 이득을 누리는 것이 기업인 것은 확실한데, 환자도 이득을 보는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의무기록만의 특수한 일이 아님을 선생님들께서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구강 스캐너나 CAD/CAM의 사용 같은 경우도 당연히 이점을 지니고 있고, 이전에 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해결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계나 기술들의 사용이 장비 비용의 증가나 사고, 오용 가능성 등 새로운 문제를 도입한다는 사실은 잘 주목받지 못합니다. 물론, 이런 기술들은 이전보다 나은 결과나 이득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을 통해 정말 이득을 보는 것은 다른 사람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들이 있으니 디지털 헬스케어를 도입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솔직함입니다. 이런 기술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들이 감추고 있는 것들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사실, 그렇다면 그런 이야기는 아예 다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디지털 헬스케어의 서사는 해결이 아니라 여행 방식의 변경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보 여행을 자전거 여행으로 변경한 것이랄까요. 분명, 자전거 여행이 더 빠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전거 여행이 더 좋은 방식이라고 합의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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