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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제3차 국제 타액선내시경 학회를 다녀와서

Relay Essay 제2578번째

여름 끝자락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비행기의 착륙신호에 잠을 깼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펼쳐지는 광활한 산맥들과 어둠을 밝히는 조명들… 스위스 제네바는 그렇게 초보 여행자를 따뜻하게 맞이해준다.

 

제네바 시는 취리히 다음가는 스위스 제2의 도시며, 프랑스와 마주보는 동네인지라 프랑스어가 사용되는 스위스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다. 제네바는 편리한 교통, 쾌적하고 안전한 도시환경 그리고 중립국의 도시라는 상징성으로 많은 국제기구가 위치하여 ‘평화의 수도’로 불리며 국가 간 외교관계에 있어 주요한 장소이다. 그러다보니 ‘관광’에 초점을 맞춘 여행을 계획할 때는 사실 제네바를 들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생애 첫 해외학회를 앞두고 있는 한 명의 전공의에게 이 도시는 굉장한 매력적인 도시였다. 구시가지에 위치한 생 피에르 대성당은 12세기에 시작되어 14세기까지 대규모 공사 후 완공되어 압도적인 화려함과 웅장함을 뽐내며 유럽에서 두번째로 큰 호수인 레만 호수의 물줄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청량감과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구시가지에서 인접해있는 제네바 대학병원에서 제3차 국제 타액선내시경 학회가 개최되었다.

 

우리나라는 현재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고 이에 따라 신체의 노쇠에 대한 관심이 많이 증가하고 있다. 이 중, 구강의 노쇠 또한 중요한 사회 문제가 되었으며 이를 평가하기 위한 지표로는 타액선의 기능이 있다. 필자의 지도교수님이신 전상호 교수님은 본원에서 타액선 관련 진료를 하고 계신데, 타액선 질환의 진단 및 치료 시 1mm가 안 되는 침샘의 도관을 수기구로 넓힌 후 직경이 1mm 내외의 내시경을 집어넣고 직접 보는 방법인 타액선 내시경술을 활용한다. 타액선 내시경술은 타액선관에 내시경을 삽입하여 직접 타액선관을 보면서 시행하므로 침샘질환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진단 및 수술적인 침습없이 타액관 내에 타석제거와 같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기술로 국내에서는 2017년 제10차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에서 안전성, 유효성이 있는 신의료기술로 발표되기도 하였다.

 

2023년 9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개최된 이 학회는 2012년 스위스 제네바, 2020년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이후 3번째로 개최되었으며 전 세계 약 40개국에서 타액선 내시경을 사용하는 전문가 약 110명 가량이 참가하여 다양한 주제로 열띤 발표와 토의가 이뤄졌다. 현재 타액선 내시경술은 이비인후과에서 주로 행해지고 있어 학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이었지만 유럽의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들도 소수이지만 참여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학회에 참가한 치과의사는 전상호교수님이 유일하였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출신국가는 모두 달랐지만 타액선 내시경술을 향한 진심과 열정 아래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학회에서 만나 대화를 많이 나눴던 싱가포르의 이비인후과 선생님들은 2번의 환승과 30시간 이상의 비행을 오롯이 학회 참석을 위해 견뎌냈으며, 인구 580만의 슬로바키아에서 온 구강악안면외과 선생님 두 분은 본인들 나라에서는 아무도 타액선 내시경술을 하지 않는다며 열심히 배우려는 의지는 신의료기술을 자국에 소개하려는 국가대표를 방불케 하였다. 학회의 내용 또한 통상적인 세미나들과는 다르게 연자는 내용을 발표하지 않고 주요 쟁점이 되는 문제들을 소개한 후 패널들, 청중들과 토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끌어가는 컨퍼런스의 형태를 띠었으며 여러 임상가들의 열변과 전투적인 토론을 접할 수 있었다.

 

이대로 마무리하기는 아쉬워 학회가 끝나고 난 후 하루정도 시간을 내 관광을 해보기로 했다. 스위스는 유럽의 유명한 산맥인 알프스 산맥을 끼고 있는 나라로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레만 호수를 따라 여러 도시들이 위치하고 있는데 유명한 도시로는 체르마트, 몽트뢰 등이 있다.

 

새벽 5시, 어두운 하늘이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떴다. 제네바 중앙역에서 3시간 가량 열차를 타고 가면 체르마트에 도달한다. 2013년 ‘꽃보다할배’에 방영된 뒤 유명해진 이곳은 스위스 마테호른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갈 수 있는 산악열차가 있는 곳이다. 산악열차를 타고 전망대까지 올라가면 만년설이 있는 깎아져 내릴 듯한 모습의 웅장한 마테호른을 볼 수 있으며 자연이 선물해준 하이킹 코스를 따라 걸어 내려오게 되면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산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내려오다가 산악열차 중간역에 들려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먹는 신라면은 그 어떤 산해진미와도 바꿀 수 없다.

 

혹자는 “죽기 전에 스위스 지역 중 오직 단 한 곳만 여행할 수 있다면, 나는 여름이면 체르마트를, 가을에도 체르마트를, 겨울이라도 또 체르마트를 선택할 것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여름, 가을이면 예쁜 알프스 꽃들과 짙은 녹음으로, 겨울이면 눈을 무기로 매력을 발산하는 체르마트와 신비함을 가득 품은 알프스의 명봉 마테호른 산만으로도 그 이유는 충분히 설명되겠지만, 사실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청정자연을 지키기 위해 차량 진입을 철저히 금지시키고, 전통 목조 가옥 그대로를 보존해 나가는 체르마트 사람들의 자연과 사람에 대한 진정성 때문인 것 같다. 그 진정성은 체르마트 여행자들의 시선과 두 발이 머무는 곳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이는 동화 속 마을의 한 장면 같은 체르마트의 독특한 매력을 자아내기도 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즐기는 이번 국제 타액선내시경 학회는 정말 기억에 남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구강건조증 치료를 위해 타액선 내시경술을 사용하며 연구하고 기다려왔던 이 학회는 아름다운 도시인 스위스 제네바가 주는 매력이 더해져서 한층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필자는 항상 마음 한 켠 불안함이 있었다. 저기 미국, 혹은 전 세계와 비교해서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일까 하는 불안함이다. 그러나 이번 학회에 다녀온 뒤 필자가 깨달은 것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모인 임상가들의 전투적인 토론을 보고, 사담을 나누어보니 전상호 교수님과 우리 치과는 이미 다년간의 경험과 노하우가 어우러진, 다른 분들이 하는 진료에 비해 뒤지지 않는 수준의 진료를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처음이었던 학회 출장이다 보니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전 세계 많은 임상가들의 열정과 노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그들의 연구와 행보는 필자로 하여금 더 많은 자극을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