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풍속도가 변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가족과 가까운 친지만의 잔치에 주례는 거의 사라졌다. 이런 변화에는 장점도 있겠지만 결국 결혼의 무게감 또한 가벼워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과거에는 갑자기 주례가 빠지면 예식장의 대리 주례자가 등장하였다. 말끔한 정장에 유창한 주례사가 일품인데, “신록이 짙어가는 화창한 봄날에...”로 시작하는 천편일률의 ‘미사여구’였다. 그래서 미사여구 하면 성의 없고 내용이 빈약한 허사(虛辭)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지난 7월 15일 대전에서 전직 의장단 회의가 열렸다. 협회장 직선제 실시 후 관례처럼 뒤따르는 ‘선거결과 불복행위’가 도를 넘었으니, 원로들이 중재에 나서달라는 여론에 따른 것이었다.
세 시간이 넘는 열띤 토론 끝에 결론은, 의장단과 필자에게 당사자를 만나 조정을 시도하라는 위임이었다. 만남은 무산되고 박 의장의 ‘소송중단촉구’가 보도되었으나, 부척연은 이 또한 “내부 협의, 화해는 미사여구” 라는 거절로 응답하였다.
대전 태화장에서는 기자들을 내보낸 뒤 매우 격앙된 대화가 오고 갔으나, 박 의장은 외부에 공개되는 촉구문에 지극히 절제된 완곡한 표현을 한 것인데, 대화의 자리마저 거부한 부척연의 ‘미사여구’ 라는 평가절하에, 허탈감 내지 배신감을 느낀 원로는 필자만이 아니리라. 그날 회의에 필자가 준비해갔던 메모를 일부 소개한다.
치과신문 7월 10일자에 실린 박스 기사를 토대로 작성하였음을 밝혀둔다.
1. 감사보고서는 배포가 아니라 총회에서 채택되어야 유효하며, 부결될 수도 있다. 감사는 총회 선출로 권한이 막강하지만, 불신임 내지 형사적인 책임도 따른다.
2. 회장은 개인이 아니라 선거에서 당선하여 선관위가 인정한 공인이며, 소송 제기인이 아니라 협회장으로서 소송을 당한 입장이다. UD의 파상공세 같은 상황에서, 협회가 법률비용을 부담한 전례가 있다.
3. 비영리법인인 협회는, 지부 부동산 등기도 중앙회 명의를 요하는 것으로 안다. 지부는 내부적인 자율 감사가 원칙이지만, 행안부와 지자체의 관계처럼, 필요할 경우 중앙 본부 감사를 할 수 있다. 물론 전담하는 상설기구는 없는 것으로 안다. 그 외에, 합의된 보고서로 말을 해야 하는 감사들의 개인적인 의견은 생략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지만, 현실은 무자비한 약육강식의 동물세계에 다름없다.
결론적으로 첫째, 법조계에서는 사회의 안정을 위하여, 씻지 못할 앙금을 남기는 판결보다 당사자 간 조정과 화해(Arbitration & Conciliation)라는 윈/윈으로 갈 것을 권한다. 둘째, 변호사들은 종교단체와 종중(宗中), 전문인단체의 소송 수임(受任)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옳거나 그를 수가 없으니까, 그저 회원 수가 많은 편 손을 들어준다. 셋째, 사회에 순기능을 하는 단체라면 특히 악의적인 범법행위가 드러나지 않으면, 판결은 단체의 분열보다 항상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상과 같은 판단 아래 다음과 같은 권고내용을 준비하였다.
의료인의 독점적 지위 인정과 국민존경의 핵심인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의장단 중재 하에 양측이 만나서 소통하고, 고소 고발 및 일체 소송행위를 멈추라.
1) 피 고소인은 반격이 불가능한 시점에 상대 발목을 묶고, 결국 무혐의로 드러난 내용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매도한 행위에 대하여, 정중한 사과와 추후 협력을 약속하고 (선거에 임박한 협회의 지부감사 및 내용 유출), 2) 고소인은 이를 수용하여, 전 회원의 공적(公敵)이 되기보다는, 사건을 긍정적인 경력으로 삼을 것을 권고한다.
3) 회의 결과를 결의문으로 작성하되, 1) 2)는 비공개로 하도록 의장단에 위임한다.
4) 최종 결의문에 들어갈 요구사항: (1) 상호 의사의 소통 (2) 사과와 화해의 선언 (3) 선거결과 승복과 소의 취하 (4) 상호 협력의 약속.
이상이 7월 15일에 준비하고 결과적으로 비토당한 내용이었다.
감정이 격앙되면 저도 모르게 소송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다. 이럴 경우 누군가가 나서 대화의 장을 마련함은, 조정과 화해(A & C)라는 퇴로 내지 출구를 열어주는 의미가 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하니, 내미는 손은 그냥 잡아야 한다.
직선제 실시 이후로 선거불복과 소송은 하나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역사를 보면 국가의 패망원인은 한결같이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내부총질’이 우선한다.
소송이 길고 격화되면 내부총질은 필연적이다. 2008년 의사들의 내부총질은 의정회와 치정회의 붕괴로 이어지고, 그나마 준 합법적 로비의 길도 막혔다. 직업 자체가 하루아침에 소멸하는 엄혹한 격동의 시대에, 배운 사람들이 이 무슨 변고인가?
미사여구는 싫다하니 양아치 문법 ‘품바’로 글을 마무리한다. “얼씨구 소송이 들어간다, 절씨구 당선무효, 잘 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각설이 타령 따라 부르기는 이제 그만 하자. 할 일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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