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군 창평면, 인구가 적어 오가는 이 드문 한적한 시골 마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한 치과의원 간판 아래로 최근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창평면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아버지 김용철 원장(창평성심치과)과 함께 아들인 김상민 교수(전 단국대 세종치과병원 치주과 과장)가 개원의로서 새 도전에 나선 것이다.
무채색의 겨울 풍경 속 눈길을 사로 잡은 건 치과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이었다.
고딕체로 적힌 ‘1월부터 김상민 교수 진료 개시’라는 문구는 투박하지만, 지역민을 위해 헌신해 온 치과의사 아버지와 그 뜻을 이어받기 위해 모교를 떠나온 치과대학병원 교수 아들의 아름다운 동행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사실 창평면은 수익성을 따지는 일반적인 개원 입지와는 거리가 멀다. 김상민 교수는 “아버지가 처음 이곳에 터를 잡은 건, 근처 의원을 운영하던 고등학교 후배분의 권유 때문이었다”며 “거동이 불편해 읍내까지 나가기 힘든 어르신들이 의원에 들른 김에 치과 치료까지 편하게 받게 하려는 배려였다”고 전했다.
당시 김 원장은 아들이 계속 교수직에 있을 것이라 여겼기에, 욕심 없이 지역 어르신들을 돌보며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천천히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가족과 일상을 찾아 돌아온 아들 덕분에, 조용히 저물어가던 김 원장의 치과도 제2의 개원을 맞이하게 됐다.
잘나가던 대학병원 교수직을 내려놓은 김 교수의 결단 배경에는 가족, 성장, 본질이라는 세 키워드가 있었다.
김 교수는 “11년의 장거리 연애와 6년의 주말부부 생활로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하는 미안함이 컸다”며 “무엇보다 나를 있게 한 뿌리인 아버지가 더 연로해지기 전에 아버지의 진료 철학을 곁에서 배워 담양군민의 구강 건강을 지키는 백년치과의 기틀을 닦고 싶다”고 밝혔다.
김용철 원장은 “선배 치과의사로서 아들이 험난한 개원가에 나오는 것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파트너”라며 웃음 지었다.
보철과 박사인 김 원장과 치주과 전문의인 김 교수는 아버지의 노하우와 아들의 술식이 완벽한 임상 시너지를 낼 것으로 자신했다.
김 원장은 “아들이 잇몸을 튼튼하게 다져주면, 내가 그 위에 보철을 올린다”며 “대학병원에 가야만 가능했던 고난도 진료를 집 앞 치과에서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주민들에게 드리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동행은 진료실 밖에서도 이어진다. 김 원장은 20여 년째 광주교도소 등에서 재소자 진료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김 교수도 “아픔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부임 첫 달부터 진료 봉사에 동행했다.
김 교수는 “장애인 진료 등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 영역을 더 넓혀갈 것”이라며 “학술 활동도 멈추지 않고 모교인 단국대 치주과와 연계해 학계와 개원가를 잇는 가교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0년 뒤의 모습을 묻자, 부자의 시선은 같았다.
김 원장은 “2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우리 부자의 동행이 치과의사들에게는 흐뭇한 귀감이 되고, 주민들께는 구강 건강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안식처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대학병원 재직 시절, 심한 치주질환이나 임플란트 주위염 환자들을 치료하며 임상적 예지성이 확립된 고성능 전문 약제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치료 결과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체감했다”며 “이러한 디테일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치과를 만들어, 10년 뒤에도 아버지와 나란히 따듯한 인술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