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하거나 성이 나서 퉁명스럽게 하는 말투를 뜻하는 볼멘소리는 ‘볼메다’ 라는 표현에 그 어원이 있다고 합니다. 볼이 메어(막혀) 있는, 즉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게 입을 꾹 닫고 볼을 퉁퉁하게 부풀린, 퉁명스러운 상태를 쉽게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예방치과가 아닌 장애인구강진료센터의 진료를 겸하다 보면 볼멘소리를 듣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협조가 불가능한 환자의 보호자로부터 볼멘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때로 둔기처럼 두들기고, 때로는 날 선 칼처럼 예리하게 베고 찌르는 소리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차피 쓸모도 없고 얘가 이렇게 안쓰러운데 왜 못 뽑는다는 거에요?”
휠체어에 비스듬히 누워 연신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뇌병변 장애 아동의 보호자가 울분을 토합니다.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어금니로 볼과 잇몸을 씹고 있으니 어금니를 전부 뽑아달라는 주소입니다. 잇몸이 씹힌다는 최후방 치조제에서는 제2대구치가 맹출중이지만, 튜브로 음식을 섭취하는 환자의 상황에서는 어쩌면 정말로 쓸모없는 치아일 수 있겠습니다. 발거 대상은 심한 우식 상태의 대구치 한 개이지만, 보호자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는 쪽으로 치료 계획을 확정합니다. 전신마취 수술에 6개월 대기가 필요함을 설명하자 놀라는 목소리가 다시 파르르 떨립니다. 엄두낼 수 없는 거대한 슬픔이 비칩니다. 최후의 보루랍시고 걸치고 있는 하얀 가운이 누더기처럼 느껴집니다.
“그럼 이분들은 그냥 이대로 살다 죽으라는 건가요?”
새벽같이 먼 길을 달려온 한 시설 간호사는 ‘팩트폭행’을 가하며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네 명의 지적장애 환자를 가까스로 검진하고, 그중 두 명은 파노라마 방사선 사진까지 촬영했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하던 차였습니다. 다수 치아상실 부위 수복을 원하는 한 환자의 보철치료를 의뢰하고선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있는데, 협조도 부족으로 교합을 채득할 수 없으니 치료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답변을 어떻게 풀어 설명해야 하나 고민을 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뻔한 설명에 당연한 질문, 아니 공격입니다. 수비는 전의를 상실한 채 허허 웃고야 맙니다.
“방법이 없다는 얘기죠? 예예 알겠습니다.”
휠체어에 앉아서, 또 베드에 누워 실려 오는 환자의 보호자가 심드렁한 경우를 간혹 마주합니다. 현실의 어려움에 무기력하다고 표현하기에는 그저 흥미가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들은 시설 종사자, 구급대원, 때로 환자의 친인척이기도 합니다. 분주하게 움직여서 조정해낸 최선의 치료 일정이 이들 보호자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종종 의료진이 더 나은 방법을 강구해내지 못한 탓으로 오역되며, 심드렁했던 태도가 돌아가는 일에는 마침내 흥미로 전환되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합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기구를 세게 내려놓는 무서운 방식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압적인 자세로 어려운 용어를 쏟아내며 저 또한 볼멘소리를 내뱉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빤한 데서 찾아봅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볼멘소리에 두들겨 맞아도, 깊이 찔리거나 날카롭게 베여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 상대보다는 제게 더 견고하게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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