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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

스펙트럼

“내가 뭐라고 누굴~ 설~득을 하고~”

 

동문회 날 늦은 저녁, 오랫동안 좋아하고 존경해 온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어떤 사람의 말이 그냥 내 귀에 쑥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땐 그 말이 나더러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어도 내가 그 말을 듣는다. 선배님의 그 말씀이 그렇게 나에게 들어왔다. 아마도 나는 많은 순간 남을 설득하려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선배님은 고등학교 동문 선배님이자 대학교 동문 선배님이셨다. 훤칠한 키와 빼어난 용모, 시원 시원한 말투와 생각. 그런 모습으로 기억되는 선배님이셨다. 내가 치과대학에 입학하여 동문회에 처음 나갈 즈음, 그 선배님은 S의료원에서 수련을 받고 계셨다. 어쩌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만 모이게 되는 경우가 있어 불고기에 당면 사리를 얹어 먹고 있으면, 그 선배님께서 퇴근길에 들르셔서, “쓸 데 없는 걸 먹고 있다.” 하시며 등심을 사주시곤 했다.

 

사리에 밝으신 그 선배님께서는 동문회 후배들에게 되는 사람은 된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셨다. 등심 외에도 그저 좋은 것들, 부러워할 만한 것들로 회상되는 그 선배님께서 남기신, 설득에 대한 촌철살인의 말씀. 나는 너무 많은 순간 남을 설득하려 했었다. 그리고, 그 설득으로 인한 책임에 짓눌려 있었다.

 

옳다고, 유익할 것이라고 믿는 것들에 대한 말이 설득의 도구가 된다. 그저 전하는 것에만 그쳐도 된다면 좋겠지만, 때로는 상대방의 생각이 바뀌도록, 마음이 동하도록 애를 써야 하는 상황도 마주하게 된다. 그 때부터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좋은 뜻에서 전한 것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경우 나의 설득은 쓸 데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진료실에서,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자리에서 조차 나는 누군가를 설득하여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이제서야 그 설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환자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마음이 되려 환자를 다치게 하고 나는 물론 직원까지 멍들게 하진 않았는지 되짚어본다. 환자와 나 자신, 그리고 청춘을 들여 나의 치과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나는 무슨 보상을 줄 생각이었는가…

 

시류를 따라 흘러가는 물고기는 죽은 물고기라고, 이적의 달팽이처럼 이상향을 향해 그저 방향만 맞게 조금씩 나아가자고 직원들을 다독이곤 했었다. 이제 직원들의 생각이 나의 그것보다 더 어른스럽고 현실과 어우러진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 손대는 순간 모두가 괴로워질 일에 그만 손대야겠다. 이제는 되려, 꼬인 실타래를 보면 풀어내야 속이 시원해지는, 내 성미에 손을 좀 대야 할 것 같다. 이제 됐다. 내려놓자. 순리대로 될 것이라 믿자.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