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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알아가는 것

Relay Essay 제2584번째

“엄마”.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울음과 함께 처음 내뱉는 한마디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에게도 나만의 수호신, 우리 엄마가 있다. 이것은 우리 엄마, 혹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5살 때의 일이다. 그날은 엄마의 생신이었다. 5살의 나는 한창 구슬 모으기에 푹 빠져있었다. 엄마께 어떤 선물을 드릴지 고민하던 나는 내가 제일 아끼는 구슬들을 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작은 상자를 가져와 가장 아끼는 구슬들만을 골라서 담았다. 일주일을 기다려 문방구에서 힘들게 구했던 분홍색 구슬을 집어 들었을 때는 순간 ‘이것만 내가 가질까’하고 고민했지만, 큰마음을 먹고 상자에 담았다.

 

그날 저녁 엄마가 케이크의 촛불을 끄신 후 나는 엄마께 눈을 감아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엄마의 손에 구슬이 담긴 상자를 꼭 쥐어주었다. 눈을 뜬 엄마는 “우와, 우리 딸 선물이 최고인데!”라고 하시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때 5살의 나는 내가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믿었다. 내가 제일 아끼는 구슬들이 엄마에게도 정말 최고의 선물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때의 엄마는 몇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받은 듯이 너무나도 기뻐하시며 웃어주셨다. 그러나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내가 엄마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첫째, 엄마는 천하장사가 아니었다. 내가 8살 때였다. 점심을 드시고는 속이 안 좋다고 하셨던 엄마는 곧 배를 움켜쥐고 끙끙 앓기 시작하셨다. 고통스럽게 찡그린 표정을 한 채 어쩔줄 몰라하시는 엄마의 모습에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엄마를 천하장사와도 같은 존재라고 믿어왔다. 엄마는 아프지도 않고 늘 강한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당시 내 눈앞의 엄마는 그 누구보다 약한 모습을 한 채 힘없이 누워계셨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힌 엄마의 모습에 나는 충격에 휩싸여 안절부절하며 그 주위만을 맴돌았다.

 

엄마께서 위염으로 앓아누운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집안 곳곳에서 그 빈자리가 드러났다. 싱크대에 탑처럼 쌓인 그릇들, 바닥에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놓여 있는 빨래들까지. 설거지부터 청소, 빨래, 식사까지 엄마는 천하장사도 혼자서 다 못해낼 일들을 늘 홀로 해내고 있던 것이었다. 천하장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둘째, 엄마도 한때 어여쁜 소녀였다. 내가 14살 때였다. 나는 거실 한쪽에서 색이 바랜 오래된 앨범을 발견하였다. 앨범을 펼쳐보니 웬 젊고 예쁜 아가씨가 사진 속에서 수줍게 웃고 있었다.

 

“엄마, 이게 누구야?” 나는 엄마께 여쭤보았다.

“아, 엄마 젊을 때 사진이야. 엄마가 젊었을 때는 아주 유행의 선구자였어. 친구들이 쇼핑갈 때 늘 엄마를 데리고 갔다니까”라고 하시며 수줍게 웃으셨다. 엄마의 말대로 사진 속 엄마는 너무나도 예쁘고 화려했다. 곱게 화장한 얼굴에 긴 나팔바지와 재킷까지. 낯선 엄마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져 한참을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엄마는 언제나 지금의 엄마였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도 한때는 수줍은 소녀였고, 어여쁜 아가씨였다. 엄마는 필요 없다며 쇼핑을 가서도 늘 내게 어울리는 것들을 찾아주기 바빴던 엄마도 한때 누구보다 꾸미기를 좋아하는 소녀였던 것이다.

 

셋째, 엄마도 엄마가 되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18살 때쯤이었다. 엄마와 사소한 일로 다툰 적이 있었다. 서로 날이 선 채 오고 가는 말들 속에서 나는 상처를 입었고 이번만큼은 엄마의 잘못이 더 크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결코 내가 먼저 굽히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입을 굳게 다문 채 방에 앉아있는 내게 엄마가 먼저 찾아왔다.

 

“딸, 잠시 얘기 좀 할까?” 엄마가 먼저 말을 건네셨다. 나는 내 입장을 호소하며 어떻게든 나의 억울함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때 엄마께 듣게 된 대답을 아직도 여전히 잊지 못한다.

“딸, 미안해. 엄마도 엄마인게 처음이라 서툴러서 그랬나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다. 엄마도 엄마가 되는게 처음이었던 것이다. 나는 늘 ‘처음이니깐’, ‘아직 아이니깐’이란 이유로 관대함을 요구하면서 정작 엄마에게는 늘 완벽함을 바래왔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엄마도 엄마가 되는게 처음인데, 한없이 서툴고 때론 틀릴 수밖에 없는 것인데 말이다.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가수 god의 ‘어머니께’라는 곡에 있는 가사로, 어릴 적 가난하였을 당시 자장면을 싫어한다는 거짓말로 늘 아들에게 자장면을 양보해주셨던 어머니의 사랑을 담아낸 이 대목은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해주었다.

 

그렇다. 우리가 한참이 지나 성인이 되어서야 어머니가 진정 자장면을 싫어하셨던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듯이, 어머니의 배려와 사랑은 너무나도 깊어 미처 다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엄마께 문방구 구슬을 선물해주던 5살짜리 아이가 이제는 엄마께서 평소 보고싶어 하셨던 뮤지컬 티켓을 선물해드리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지만, 난 여전히 엄마에 대해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을 것 같다. 내가 아직도 미처 다 알지 못한 엄마의 오랜 노력과 사랑,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평생토록 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