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탕후루와 엿가락

Relay Essay 제2587번째

요즈음 탕후루가 선풍적인 유행이다. 제철 과일에 설탕 코팅 범벅을 해놓은 이 요사스러운 음식은 한눈에 보기에도 단맛을 대가로 치아 건강을 무참히 앗아가는 듯하며, 이렇게 탕후루 유행이 지속된다면 장기적으로 치과 가족 여러분들의 매출에도 약소하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상상을 하곤 한다. 실제로 친구들은 내게 1층에 탕후루 가게를, 2층에 치과 개원을 하는걸 강력히 추천하기도 하며, 단 음식에 대해 자제력이 뛰어난 나 역시 탕후루 한 줄을 게걸스레 비운걸 보면 한참 단걸 좋아할 어린 학생들이 탕후루에 열광하는건 어찌 보면 당연해보이기도 한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서늘해지며 붕어빵과 오뎅에 자리를 내주긴 했으나, 여전히 길가엔 탕후루를 베어 물며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항상 스마트폰을 들고 있거나, 귀에 에어팟을 꽂고 양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무심하게 길거리를 걸어가던 사람들의 손에 과일이 꽂힌 막대가 들려있는 자못 신기한 풍경을 바라보다 보니 어릴 적 할아버지가 쥐어준 엿가락을 손에 꼭 든 채 혀로 열심히 녹여 먹던 내 어린시절이 무심코 겹쳐 보였다. 시골길 어귀에서 엿장수가 플라스틱팩에 조악하게 포장해 이천 원 남짓에 팔곤 하던 그것을 당신께선 내가 시골에 갈 때마다 꼭 한 팩씩 사서 흐뭇하게 주시곤 했다. 노오랗고 길다란 엿가락을 쪽쪽 빨다 보면 점차 흐물해지며 딱 먹기 좋은 상태로 변하는 것이 어린 나이엔 퍽이나 흥미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간혹 성미가 급해진 내가 아직 채 물렁해지지 않은 엿을 힘껏 깨물었다가 덜렁거리던 유치가 턱 하니 빠져버린 유쾌한 사건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별다른 유희 거리 하나 없던 시골에 가는걸 철없던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파란색 슬레이트로 얼기설기 만든 지붕 아래에서 한평생 농사지으며 고생하던 와중에도 내가 오는 걸 빙그레 맞아주시고 또 엿가락을 사다 주시던 당신의 사랑은 아직도 내 어린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그러나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패인 주름이 깊어가고 손이 점점 야위어가는 걸 눈치채지 못했고 그렇게 매번 꾸준히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엿은 한순간 어린 내 일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당신께서 급작스러운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후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나는 엿을 잘 찾지 않게 되었다. 머리가 커지면서 엿의 단맛이 싫어진걸까 내게 엿을 쥐어줄 사람이 없어서 허전해진 것일까. 엿에 대한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도 그때의 순수했던 나의 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그대 때문일까. 당신께서 주신 사랑과 관심을 만분지 일이나 채 돌려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후회가 되었다. 쬐끄만 아이가 효도하면 뭐 얼마나 잘해드렸겠냐만은 어깨 한번 더 못 주물러 드린 것, 몸이 근질거려 얼른 집에 가자고 떼쓴 것은 항상 죄송한 마음에 빚으로 남아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길거리 간식이 누르스름하고 투박한 엿에서 알록달록한 탕후루로 바뀌었지만, 부모님의 손을 꽉 맞잡고 탕후루를 오독오독 먹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어버이들의 사랑과 관심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변치 않는 모습 그 자체인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엿의 추억이 제법 성인이 된 나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듯이, 저 아이들에게도 탕후루의 추억이 달디단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할아버지! 당신께서 주신 이루 보답할 수 없는 사랑을 채 갚지 못했지만, 당신의 아들딸께 평생 조금이나마 돌려드리며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