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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엠립 진료수기

스펙트럼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진료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처음 병원에서 좋은 기회를 제안받고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출발이 가까워져 오니 걱정이 앞섰습니다. 주된 걱정 가운데 하나는 현지에 대한 이해도, 즉 현지의 상황을 너무 모르고 막연하게 출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현지의 기후, 치안, 물가 등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지만, 여행이 아닌 진료 봉사를 목적으로 제가 사전에 알고자 했던 현지의 구강건강 관련 정보는 확인이 불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개개인의 구강건강상태가 심각하여 수복과 발치를 끊임없이 할 것이라는 막연한 수준의 정보에, 그만한 각오를 다지며 출국길에 올랐습니다.

새벽 두 시에 강릉에서 집결하여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 하노이를 경유해 씨엠립에 이르는 여정은 말 그대로 멀고도 험했지만, 건기에 해당하는 현지의 저녁 날씨는 제법 괜찮았습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휴대폰에 현지 통신사 유심칩을 끼워보니 인터넷도 무척 빨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휴대폰 앱으로 이용 가능한 콜택시와 음식 배달 대행까지 각종 생활 편의 서비스가 무척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이 다들 비슷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정도면 구강건강관리 환경도 적절한 수준이겠거니 속단하며 첫날 밤이 지났습니다. 

둘째 날, 본격적으로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한 초등학교의 교무실을 진료실로 정하고 준비해간 이동식 진료 장비를 설치했습니다. 길게 줄 선 아이들이 입구에서 1차 검진 후 저마다의 치료 계획이 적힌 종이 한 장씩을 들고 입장했습니다. 저에게도 한 남자아이가 다가와 수줍게 종이를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전날 밤의 속단이 고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마다 다수의 심한 치아우식과 유치의 잔존치근이 관찰되었지만, 현실적으로 즉일처치가 가능한 치료만 치료 계획에 포함되었습니다. 심한 치아우식 병소의 주변에는 높은 우식활성과 우식위험도를 추정할 수 있는 심한 치태가 빠짐없이 관찰되었습니다. 불소이용을 하고 있는지, 아니 그 전에 매일 치아를 닦고는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진료를 마치고 현지 편의점에 잠시 들렀습니다. 편의점은 구성에 있어 한국 편의점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진열장 한쪽을 가득 채운 구강관리용품은 한국보다도 다채로웠고, 심지어 치약 대부분이 한국에서 허용하고 있는 최대 농도 수준의 불소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치약 한 개 가격이 4000원, 칫솔이 1500원 수준으로 4인 가구 기준 한 달에 1만 원이면 구강건강관리 실천이 가능할 터입니다. 

 그런데, 제가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캄보디아 일반 국민의 소득 수준입니다. 1인당 GDP가 20배 가까이 차이나는 국가에서 구강관리용품의 가격차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친 것입니다. 한국에서 400만원을 버는 사람에게 1만원은 0.25%에 불과하지만 캄보디아에서 20만원을 버는 사람에게 1만원은 무려 5%에 해당하는 것으로, 한국으로 치자면 월 소득액이 400만원인 사람이 20만원을 구강관리용품에 사용해야 구강건강관리 실천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후 현지 NGO 대표, 치과재료업체 관계자를 비롯한 봉사 스태프가 함께 모인 간담회 자리에서 수입 공산품이 비싼데 현지 생산 공장은 없고, 기후 탓에 유통과 보관에 어려움이 많다는 배경적인 내용까지 알게 되니 궁금증이 풀려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국제기구의 수많은 보고서를 읽었지만 이처럼 현실적으로 찜찜한 느낌이 남은 적은 없었습니다. 

단기 진료봉사자의 현실로 돌아와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각오로 진료실을 다시 찾았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간밤에 쥐가 침입해 제 자리 진료장비를 처참한 수준으로 고장낸 것입니다. 어찌나 고약한지 핸드피스, 3-way 시린지 할 것 없이 모든 선을 갉아서 끊어먹고, 플라스틱이며 금속판까지 물어뜯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고작 진료 이틀 차에 저는 발치밖에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고, 어찌됐건 제 쓸모를 다하기 위해 현지 통역의 도움을 받아 캄보디아 언어인 크메르어로 구강건강관리 지침 포스터를 제작하여 NGO측에 전달했습니다. 

구강건강관리 지침의 핵심 내용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구강관리용품의 사용이 필수적인지라 지침 포스터를 제작하는 내내 다소 힘이 빠지기는 했지만, NGO측의 활용 의지에 힘입어 현지의 환경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포스터를 완성했습니다. 불소용품이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고, 학교에 양치실이 설치되는 등 한국에서 구강건강관리 환경이 크게 변화한 배경을 빠짐없이 공부해서, 언젠가 다시 찾을 캄보디아에 또 다른 도움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