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3 (토)

  • 구름조금동두천 9.6℃
  • 흐림강릉 7.8℃
  • 구름조금서울 11.5℃
  • 구름많음대전 10.8℃
  • 구름조금대구 12.3℃
  • 구름많음울산 11.9℃
  • 맑음광주 10.8℃
  • 맑음부산 15.7℃
  • 맑음고창 11.2℃
  • 흐림제주 12.1℃
  • 맑음강화 10.3℃
  • 구름조금보은 10.7℃
  • 구름조금금산 10.3℃
  • 맑음강진군 12.4℃
  • 흐림경주시 10.5℃
  • 구름조금거제 13.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3000호 특집>“은퇴 시기? 손 떨릴 때까지…정년 없어 고민”

상당수 은퇴 후 소득 계획·치과 처리 방법도 ‘막연’
현 재무평가 우선, 치과 가치 잇는 인수인계 이상적
■치과의사 정년, 준비하고 계십니까?

 
“원장님은 몇 살에 은퇴할 계획이세요?”란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손 떨릴 때까지”였다. 30대 갓 개원했을 때 처음 만났던 A원장이 50을 넘어서고 있었다. ‘본인 보다 가족이 행복한 직업’, ‘아내에게 백화점 VIP카드를 쥐어 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시샘 반, 부러움 반의 시선을 받는 이 업의 끝을 A원장은 이제야 고민해 본다. 


A원장은 “은퇴를 한다고 하면 경제적인 부분도 준비해야 하지만 환자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가 제일 걱정될 것 같다. 치과의사는 정년이 정해져 있지 않아 더 어려운 직업인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치과의사를 벗어난 삶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개원가 원장들에게 ‘치과의사 정년, 준비하고 계십니까?’란 화두를 던지고 반응을 살펴봤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돌아가는 진료실에서 미래에 대한 공상을 할 여유가 없다. 몸이 움직일 때까지 한다”는 무대포형에서부터 “치과의사란 진료만 하는 직업이 아니다. 경영에 눈을 떠야 은퇴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전략가형까지 천차만별이다. 은퇴에 대한 개원들의 고민, 그리고 거기서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그려봤다. 

 

A원장의 요즈음 고민은 사실 은퇴가 아니라 확장성에 한계를 보이는 매출, 어느 순간부터 늘 통증을 달고 사는 손목과 어깨다. 


A원장은 “가족들의 씀씀이는 커진 상황에서 수익은 그대로거나 하락세고, 치과 운영 고정비와 물가 등은 계속 오르고 있어 불안감이 크다. 동료들끼리 모이면 농담 삼아 손 떨릴 때까지만 하자고 하는데, 요즘 같은 스트레스라면 흔히 정년이라고 얘기하는 65세까지 치과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래서 우선은 건강관리부터 신경을 쓰려 한다”고 말했다. 


올해 정확히 만 50세가 된 B원장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치과의사가 돼 치과를 더 오래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원래 공대에 다니다 군대를 다녀와 늦게 치대에 입학한 케이스. 


B원장은 “남들은 치과의사라고 하면 부러워하는 시선을 보내는데, 치과의사의 유일한 장점은 정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 하나인 것 같다. 그만큼 ‘남들보다 더 오래 일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장비 욕심이 많아 이것저것 무리해서 들여놨더니 할부금 갚는 데만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은퇴 준비는 60이나 돼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정년이라고 하는 연령대는 65세 전후. 동아일보가 지난해 2월 20~30대 직장인 및 취업준비생 등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9.8%가 ‘정년을 현재보다 연장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청년들이 생각한 정년의 평균은 ‘65.8세’로 나타났다. 


또 최근 보험개발원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남자 평균 수명은 86.7세, 여성은 90.7세로, 65세 이후 기대여명(향후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 연수)은 남자 23.7년, 여자 27.1년으로 나타났다. 65세에 은퇴해도 20여 년은 더 소득이 필요한 상황이다. 업종을 불문하고 고령화, 고물가 시대에 맞춰 평균 은퇴 희망 연령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월 3백 노후의 삶, 전문직도 만만치 않아”

은퇴는 늦어도 50세부터 꼼꼼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현 매출 30% 이상 노후 소득되도록 포트폴리오 구성을
노년엔 인간관계, 사회적 역할에 가치를 둬야 보람 커

 

# 자본소득으로 점진적 전환 필요    
현재 기준 60세 이상 치과의사수는 ▲60대(64-55년생) 5970명, ▲70대(54-45년생) 1496명, ▲80대(44-35년생) 712명, ▲90대 이상 456명 등으로 집계됐다. 이 중 70대까지는 상당수가 아직도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중산층 부부 기준 은퇴 부부의 적정 생활비는 2022년 3월 기준 월 314만 원, 서울의 경우 330만 원이 필요하다는 추계 결과가 있는데, 330만 원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은퇴 부부의 비율이 은퇴 가정의 10% 미만이며, 자신들의 계획대로 노후준비가 잘 됐다고 여기는 가구의 비율이 8.7%에 그친다는 통계가 있다. 


현재 치과의사 평균 소득을 고려했을 때는 어렵지 않아 보이는 금액일 수 있지만, 이미 높아져 있는 소비수준과 현재 자산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전문직이라도 은퇴 후 생활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자신의 매출에서 30% 정도의 소득이 은퇴 후에도 계속해 발생해야 하는데, 이는 웬만한 준비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금융전문가의 지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치과의사에게 이상적으로 추천되는 은퇴의 양식은 근로소득자에서 자본소득자로의 점진적 변모. 60세 이상이 돼서는 자본에 의한 소득이 근로소득을 역전해야 하며, 부동산 등 전통적인 선호 자산의 개념에서 탈피해 유동성이 큰 금융자산으로의 전환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금융전문가는 “실제 치과의사 등 전문직들을 보면 의외로 은퇴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스스로에 대한 적절한 재무평가를 해 ‘개인의 재무제표’를 만들어야 하며, 현재의 재정 상태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늦어도 50세를 은퇴 준비의 시작으로 삼아 저축, 투자, 부채 등을 총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내 행복의 근원 탐구시간 중요 
그리고 치과의사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치과병·의원의 이상적인 처리절차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엔 ‘폐업’ 아니면 ‘양도양수’인데, 이와 관련 실제 은퇴를 했거나 은퇴 과정을 밟고 있는 치과의사들의 사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박병기 원장(광주 대덕치과의원)의 경우 50대 때 치과의사란 직업에 대한 권태감이 심하게 와 잠시 쉼이 필요했다. 그러나 평소 천직이라 여겼던 본업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던 상황. 평소 지역사회에서 알고 지내던 후배에게 치과를 인수인계하며, 잠시 휴식도 취하고 다시 치과로 돌아올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박병기 원장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이라 별도의 계약서도 없이 치과 운영 권한을 넘겨주고 후배가 차차 치과 양도양수 금액을 갚아 나가게 했다. 그리고 한 2년 정도 쉬며 하고 싶은 일도 하고 내 자신이 진정 행복을 느끼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지금은 1층에서 오전 진료만 하고 임플란트 등 어려운 진료는 2층 본원의 후배 원장이 하도록 하고 있다. 이도 얼마 남지 않았다”며 “70세가 넘어 진료를 하는 선배들도 여럿이다. 그러나 은퇴는 50대 초반부터는 준비해야 한다. 치과의사란 직업은 사회적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확실한 무기이지만, 이것만 믿고 젊은 시절 무리한 지출을 하거나 막연한 투자 등에 빠져서는 안 된다. 건전한 소비 철학을 세우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행복에 대한 탐색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옥용주 원장(내이처럼치과병원)은 최근 평소 존경하던 선배를 페이닥터로 모셨다. 구강내과를 전공한 분에게 턱관절 진료를 전담케 한 것인데, 공과 사의 구별은 확실히 했다. 치과에서 진료시간과 공간, 어시스트만 제공하고 기본급은 없이 철저히 인센티브제로만 수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결과는 선배 치과의사의 만족도도 크고 경영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 


옥 원장은 “치과의 가치가 계속해 이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느 순간이 오면 동료에게 인수인계하는 것이 최선인데, 치과에 대한 정확한 가치평가가 이뤄져야 나중에 은퇴 시 치과의 가치를 그대로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치과의사는 진료의 주최이자 경영의 주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원장들이 진료에만 함몰돼 효율적 업무분장과 직원 관리를 통한 매출 성장 효과에 무지한 편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 스탭들이 모두 주인의식을 갖게 해 치과가 자동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었을 때 은퇴 시기도 빨라진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 은퇴 후 사회적 활동 준비도 필수
감정적인 측면,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과 대비도 필수다. 


한 사회학자는 “치과의사와 같은 전문직은 수익과 사회적 인정 등에서 얻는 직업 만족도가 크다”며 “이러한 직업군의 특성은 은퇴 후에도 노동시장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하며 자신의 직업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한 한 연구에서는 퇴직 후에도 계속 일을 하려고 하는 의사들의 경향성 분석을 통해 의사란 직군을 ‘일하는 퇴직자’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높은 지위와 고소득, 자율성이 보장되는 직업이기에 자신의 직업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크며, 이는 은퇴 후에도 계속돼 자신의 재능을 통해 사회에서 역할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반 직업군에게는 은퇴가 사회적 단절을 야기한다면, 치과의사에게 있어서는 은퇴가 새로운 사회로의 진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생의 후반기에 가서는 경제적 의미에 가치를 두기보다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경향이 크다는 설명. 이 때문에 치과의사에게 은퇴에 대한 고민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70년대에 개원해 한 자리에서 50년 넘게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C원장. 그에게 치과는 더 이상 수익활동의 공간이 아니다. 지역사회에서 오랫동안 돌봐온 환자들에 대한 약속이다. 오래된 할아버지, 할머니 환자들이 오면 틀니 조정에 들이는 시간보다 인생 얘기로 흘러가는 시간이 더 길다.  


C원장은 “원래 치과의사에게는 은퇴란 개념이 없다. 몸이 움직이는 한 내가 봐온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며 “은퇴 후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후배들이 있는데, 봉사를 하려면 젊어서부터 시작하라. 대개의 봉사단체에서 너무 나이든 의사는 봉사자로 받아주지 않는다. 결국은 인간사이의 관계에 더 신경 쓰며 은퇴를 준비하라. 그 관계 속에서 내가 새롭게 있을 곳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