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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치과”, 어떻게 무죄 판결이 나올 수가 있지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61)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아마 이런 사안을 관심 가지고 추적하고 계시니 선생님도 최근 투명치과 1심 판결이 나왔음을 알고 계실 겁니다. 사기 및 업무상과실치상 무죄 판결이 나왔더군요. 판결이 이상한 것 아닌가요? 환자에게 그렇게 큰 금전 및 구강건강 상 손해를 끼쳤는데 이 모든 게 무죄로 판결되다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건, 어떻게 보시는지요? 익명

 

이 사건에 관해 크게 관심이 없으신 선생님도 계실 것이므로, 먼저 사건 개요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투명치과”는 모 원장이 가로수길에 사방을 통유리로 디자인한 건물을 2013년 세우면서 들어섰던 교정 중심 병원이었어요. 특히, 투명교정 장치를 활용한 교정을 본격적으로 권하고 전직 모델 등 잘생긴 남성 코디네이터를 배치해 여성 환자들을 표적으로 한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펼쳤습니다. 2010년대 후반기엔 SNS를 통한 할인 마케팅에도 열심이었지요.


그러나, 진료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환자들이 환불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미리 당겨 받은 할인 진료비로 병원 운영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파행 운영을 하던 병원은 결국 문을 닫게 됩니다. 2018년 ‘투명치과 먹튀 사건’으로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면서 널리 알려졌던 이 건으로 천여 명의 피해자가 수십억 원의 교정 치료비를 돌려받지도 못하고 치료도 받지 못하면서 큰 물의를 빚었지요.


이 사건, 최근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지난 2월 15일 담당 판사는 해당 병원을 운영하던 원장이 인증받지 않은 교정장치 재료를 제조한 혐의(의료기기법 위반)와 일부 병원 직원에게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근로기준법 위반) 등만을 인정하여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사안에서 관심을 모았던 사기,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는 모두 무죄 판결이 났지요. 다시 말해, 대표원장이 환자에게 투명교정을 강요하고 의도적으로 투명교정 처방을 내렸다거나, 진료 과정에 개입하여 고의로 환자에게 진료 과정에서 상해를 입혔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재판부가 결정한 것입니다.


이 사건의 진행을 보면서 이전에 한 존경하는 교정과 교수님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어요. DIY 투명교정 장치의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던 중, 교수님은 이런 사안을 다루는 데에 있어 원하는 치료 결과를 낼 수 없는 것, 더 나아가 환자에게 치료가 손상을 가할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환자에게 발생한 피해로 충분히 이런 행위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제재할 수 있으리라고도 말씀하셨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교수님의 말씀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안타깝게도 생각보다 환자 피해만으로 이런 사안을 다루기는 쉽지 않음을 이번 사례는 잘 보여줍니다. 치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은 어려운데,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모든 치료는 실패할 수 있으므로 결과를 놓고 의료인의 잘잘못을 따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법은 주의 의무를 따집니다. 주의 의무란, 현재의 평균적인 의료 수준에서 의사가 마땅한 수준의 주의를 진료 과정에서 기울일 것을 요구하며, 이에 실패하였을 때 의사의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초기 우식 와동을 삭제하다가 한눈을 팔아서 신경이 노출되면 의사의 책임이지만, 중등도에서 고도 우식의 와동을 삭제하다가 신경이 노출되면 그것을 의사 책임이라고 말해선 안 되는 것이죠.


그리고 치료가 실패한 여러 경우에서 이것이 의사의 부주의함 탓인지, 누가 해도 그렇게 될 만한 일인지 말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기준을 세우면 선의의 피해자가 늘어날 것이므로 그렇게 접근해선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어떤 치료가 실패하면 의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면 의사 잘못이 아님에도 의사가 책임져야 하는 경우들이 생기지요. 산부인과의 분만 사고에서 과실 책임 원칙을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명백히 의료인이 실수한 경우들이 드물게 있지만, 오히려 의도적으로 질이 떨어지거나 문제 소지가 있는 진료를 하는 이들의 경우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장치들을 해놓는 편이지요. 예컨대, 위 투명치과 사례에서 책임원장의 업무상과실치상 혐의가 인정되지 않은 것은 직접 진료를 한 것이 페이닥터들이지, 시스템을 설계, 운용한 책임원장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비록 사안을 다루는 데에서 강제력을 지니는 것이 법이긴 하지만, 미리 피할 구석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은 생각보다 무딘 칼입니다.


윤리의식 강화가 궁극적인 답이긴 하겠습니다만 악한 의도를 지닌 이에게 윤리는 무소용인 것도 사실이지요. 우리 안에 분명 잘못된 방향성을 지닌 극소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만, 윤리는 그들 외 선한 의도를 지닌 다수를 위한 것입니다. 물론 다수의 비난과 견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으며 이 또한 윤리와 도덕의 방식이긴 합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선 그렇게 접근하는 데에 제도적이나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있지요.


따라서, 이 사례를 법과 윤리 모두의 문제로 바라보되 그 초점을 다른 곳에 맞추어 주시기를 저는 감히 청하는 바입니다. 이런 사건에 있어 환자의 피해는 중요하며 이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방지를 위해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진료 시스템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영리적 의료(여기에서 영리적 의료란 진료를 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수익을 내기 위해서 나쁜 치료나 부족한 치료도 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라는 개념을 부정하며 그것이 환자뿐 아니라 의료인에게도 악영향을 미침을 인정한다면, 이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접근을 위해 본 투명치과 사례나 최근 논란 중인 임플란트 덤핑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자리는 윤리학을 위한 지면이므로 더 다루지는 않겠지만, 싸게 많은 진료를 제공하는 경영적 접근에 연루된 여러 문제가 있음을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저희가 함께 모 프랜차이즈 치과의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1인 1개소법을 위한 오랜 투쟁을 벌였고 결국 성취해낸 것처럼, 이 사안 또한 비슷한 접근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분석은 다른 자리를 위해 아껴두고, 여러 선생님의 관심을 청하며 분석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