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치과에는 모든 체어에서 구강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구강 카메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신환이나 오랜만에 내원하신 환자분이 있으면 구강 카메라로 구석구석 사진을 찍습니다. 상담할 때 그 사진들을 활용하면 환자분의 이해를 돕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진료 중간 중간에 중요한 장면이 있으면 구강 카메라로 찍어서 환자분께 보여드립니다. 충치는 모두 제거되고 치수는 노출되지 않은 상태와 같이 환자분께서 눈으로 보시면 안심이 되실 사진을 찍어서 환자분께 보여드리곤 합니다. 조금 번거로운 과정이긴 하지만 환자분과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작업입니다.
구강 카메라를 손에 쥐고 참 좋은 물건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물건이 없을 때는 어떻게 충치를 환자에게 보여주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치경과 손거울을 이용해서 어찌 어찌 충치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는 해도 치료방법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게 하기에는 부족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자분이 비용에 대해서 납득하고 치료에 동의하게 하기까지 신뢰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의사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치료를 받는 풍경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치경과 손거울을 이용해서는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충치도 있습니다. 어둑 어둑, 겨우 보이는 모습을 손거울로 적당히 확인하고 “원장님을 믿으니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말씀하셨을 환자분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의료인이 받는 신뢰는 거의 당시 종교인이 받는 신뢰와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환자들에게 있어서 치과를 옮기는 것은 교회를 옮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구강 카메라의 유용성을 생각하다가 이 사회 전반을 타고 흐르는 불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구강 카메라가 있어서 의심이 싹트기 전에 의구심을 불식시키고 통증을 수반하는 치료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만 이 마저도 언젠가는 불신 사회 한국의 대단한 의심병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자는 판국에, 딥페이크로 죽은 사람의 연설 동영상도 만들어내는 세상에 구강 카메라도 소용이 없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신뢰를 잃어버린 것은 의료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뢰해가며 살아가기 어려워진 사회 속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잃어버린 신뢰 때문에 치르지 않아도 될 대가를 치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 라는 사고방식 하에 합리적인 비평과 의심을 구분하지 못 한 채, 타인을 이리 찔러보고 저리 찔러보는 사람들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의심과 의심받은 경험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이 사회 전체에 불신을 전염시키고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상대방을 선하게 보느냐 악하게 보느냐에 따라 신뢰와 불신이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선하게 보면 신뢰가 싹트고 상대방을 악하게 보면 불신이 싹틉니다. 한편, 상대방을 신뢰하면 상대방이 선하게 느껴지고 상대방을 불신하면 상대방이 악하게 읽히기도 합니다. 의료계 종사자가 신뢰를 잃고 환자분으로부터 의심스러운 존재로 읽히는 일이 저희 진료실에서도 이따금씩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각론으로, 환자 개개인에 맞춤으로 사용되어야 할 지식들이 블로그, 유튜브를 타고 대중에게 흘러 들어가면서, 진료를 맡은 의료인들이 그 지식을 각 환자에 맞게 재해석하여 알려주어야 겨우 의심의 눈초리를 벗어날 수 있게 되는 상황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당장은 의심하는 사람이 똑똑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신뢰는 의심보다 높은 수준의 정신 활동입니다.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신뢰할 이유를 무시하지 않고 관계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선진 사회의 리더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의심받는 기분, 언짢은 기분을 남에게 끼치지 않기 위해 서로 믿고 사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로 믿기 어려운 시대, 의심하게 되는 사회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구강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봅니다. 의심하며 들어오셨다가도 안심하고 나가시는, 좋은이웃치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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