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다들 벚꽃 구경을 하셨겠지요. 매년 피는 벚꽃은 저희에게 추억을 상기시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갔던 유원지에서 본 벚꽃, 학창시절 수업을 빼먹고 교정으로 여의도로 돌아다니며 보았던 벚꽃, 여자친구네 학교에 가서 보았던 벚꽃 등 수많은 추억들이 벚꽃과 함께 합니다. 애들을 유치원에 등원시키던 어느 날, 흩날리는 벚꽃 잎과 푸른 하늘과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저는 아직 잊지 못합니다.
작은 꽃봉오리가 다섯장의 꽃잎을 가진 흰 꽃으로 활짝 개화를 하면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시기는 길지 않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꽃잎은 눈이 날리듯이 봄비에 날려 떨어집니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비슷합니다. 큰 꿈을 품었던 이립(而立)의 30대를 지나, 불혹(不惑)의 40대를 살아가고 나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지천명(知天命)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탈무드에서는 우리의 삶을 좀더 슬프게 얘기합니다. 돼지 같던 유아기를 지나 양과 같은 청소년기를 거쳐 말과 같이 힘차고 거칠던 청년기를 지나면,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남들의 눈치를 보는 견생(犬生)을 살아가고 자식들이 다 크고 나면 등이 굽어 원숭이 같은 모습이 되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럼 벚꽃처럼 우리의 인생도 꽃이 지고 나면 보잘 것 없어지는 걸까요?
벚꽃이 만개하였을 때는 모두가 벚꽃을 쳐다보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등이 굽은 노인처럼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벚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상처가 아물 듯 푸른 새싹이 돋아나고 곧 그 자리에 버찌 열매가 열립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벚꽃은 스스로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열매를 맺고, 다시 화려한 벚꽃이 필 내년을 1년간 묵묵히 기다립니다.
우리의 인생도 벚나무와 같이 희로애락을 반복하며 아무도 봐주지 않을 때도, 힘들고 슬플 때도 묵묵히 멀지 않아 돌아올 내년 봄을 기다리며 삶을 살아갑니다. 기다리고 참고 버티면 다시 봄이 올 것을 알기에 우리는 힘들어도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모두가 힘든 시기입니다. 모든 경제 지표가 하향세를 그리며 안정적인 직업도 안정적인 투자처도 없는 시기입니다. 어느 정도 직업적인 안정을 보장하던 개원도 이제는 위험을 부담하지 않는 이상은 자리잡기 힘들게 되었고 무한 경쟁 속에서 덤핑과 상호 비방이 난무합니다. 우리의 젊은 후배들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고, 개원의들 마저 환자 감소와 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일년에 꽃을 두 번 피울 수 없듯이 경제침체로 인한 경영의 어려움은 개인적인 노력으로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꽃을 피워야 하는 후배들은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기도 전에 꽃샘 추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욕심을 내기보단 숨을 고르고 다시 찾아올 봄을 차분히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봄이 다시 올 것을 알기 때문에 벚나무가 그 자리를 지키듯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동료 간에 무리한 경쟁을 피하고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새싹을 피우고 기다리면 반드시 봄은 돌아옵니다. 다시 돌아올 인생의 봄을 기다리며, 내년에 다시 만날 벚꽃을 기다리며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