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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과자가 일깨워준 가치관

Relay Essay 제2605번째

누군가 나에게 지난 치과대학 생활을 통 틀어서 가장 인상깊은 에피소드를 하나 꼽으라 한다면 2년 전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조혈모세포 기증 가능하신가요?’

 

난데없이 본과 2학년 1쿼터 치주과학 수업중에 받은 연락이었다. 내가 기증등록을 했던가? 아, 기억난다. 6년 전이었나, 강남역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헌혈 독려 팻말을 들고있는 봉사자분에 이끌려 헌혈의집을 들어갔었지. 헌혈을 마쳤을 쯤 담당직원분이 조혈모세포 기증등록을 하면 초코과자 한박스를 준다는 말에 혹해 등록을 했고, 그 사실을 여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기로 마음먹은 첫 순간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척추에서 직접 채취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그라신이라는 골수 촉진제를 맞고 말초혈에서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문제는 촉진제를 어떻게 전달받느냐였다. 전주에서 쭉 거주하고 있는 나로서는 기증센터가 있는 서울 용산으로 매일 올라가기엔 불가능했고, 결국 퀵배송을 통해 3일치 촉진제를 한꺼번에 전달받았다.

 

기증날짜가 정해지고 난 뒤, 촉진제를 모두 맞고난 다음 서울로 올라가자마자 졸지에 1인 병실로 감금아닌 감금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수혜자가 기증자의 조혈모세포를 이식받기에 앞서 자신의 골수를 방사선으로 모두 제거하게 되는데, 여기서 기증자가 갑자기 기증철회를 해버리면 수혜자는 면역학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틀만 참으면 수혜자는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말에 그 안에서 최대한 즐거움을 찾아보고자 했다. 먼저, 한양대병원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굉장히 좋았는데, 아무래도 병원이 고지대에 위치해있어서 그런지 노을이 질때면 저 멀리 한강이 반짝반짝 보이는 것이 넋을 놓고 창밖을 바라보게 만들곤 했다. 그리고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었는데, 창틀에 걸터앉아 바깥풍경을 바라보며 먹는 짜장면 맛이 가히 일품이었다.

 

그렇게 병실에서 이틀을 보내고 마지막 날 성분헌혈실로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러 갔고, 장정 12시간의 헌혈이 끝나고 이식센터 직원분이 검은 봉다리 하나를 들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유산균 요구르트였는데 웬걸 포장지가 하나같이 전부 뜯겨있었다. 듣자하니, 원칙적으로는 기증자와 수혜자의 접촉이 불가능하지만 간혹 환자측에서 너무 감사한 나머지 보답이라도 하기 위해 연락처 등을 물건에 남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포장지가 다 뜯긴 요구르트를 한가득 들고서 다시 전주로 돌아오는 것으로 조혈모세포 기증은 마무리되었다.

 

 

문득 본교 입학 당시, 면접장에서 나의 가치관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했던 대답이 기억난다.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가치관이 의료인과 잘 부합한다고 생각해 치과의사로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입학 이후로 학업에 정신없이 쫓겨다니기 일쑤였고, 가치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을 즈음 갑작스레 찾아온 조혈모세포 기증이 잠시 잊고 있던 가치관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마도, 이 모든 건 6년 전 강남역에서 받은 초코과자가 만들어 준 계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올 초 쯤엔가, 오랜만에 기증센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도 기증했던 골수가 수혜자에게 잘 생착하여 현재 퇴원하고 일상생활을 하고 있단다. 혹시나 거부반응이라도 있으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참으로 다행이다. 

 

졸업을 코 앞에 둔 이 시점에서, 앞으로 치과의사라는 신분으로 사회에 나갔을 때 과연 내가 의료인으로서 구강보건 증진에 기여할 수 있을지 막연한 두려움이 앞설때가 많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앞으로 의료인으로서 펼쳐질 삶의 매 순간은 수 많은 초코과자로 가득 차있고, 그 때마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있을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