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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도 동의를 받아야 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65)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안 원장은 최근 노인 환자를 많이 진료하고 있다. 신환으로 내원한 82세 김 할머니는 진행된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으며, 진료를 받으러 딸과 함께 치과를 방문한다. 김 할머니의 치아 상태는 안타깝게도 좋지 않고, 다수 발치 후 전체 및 부분 의치를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 할머니는 상황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치료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현재 치과적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것은 딸이다. 상담 중, 안 원장은 치료를 두 사람에게 모두 설명하지만, 결국 딸과 대화하게 된다. 김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치료 계획이나 위험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딸은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끝내자며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는 상태다. 안 원장은 어디에선가 환자 동의를 받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할머니의 동의 없이 치료를 진행해선 안 되는 것 아닐까?


일상적인 치과 진료에서 점점 더 많이 마주하는 상황이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이런 논의는 법적 요건과 윤리적 논의를 모두 살펴야 해서 조금 복잡합니다만, 한번 살펴보면 도움이 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위 사례에서 안 원장님의 질문, 필요할까요. 사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가족이 서로의 의료적 의사결정에 개입하거나 대신 결정하는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위의 상황이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어떻게 해도 별로 문제가 될 일은 없겠죠. 어머니를 위해 치과 치료를 제공하려는 딸,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치료를 받으실 수 있는 환자, 잘 치료해 줄 수 있는 치과의사가 있기 때문에 이 사례에선 어떻게 해도 괜찮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법적인 문제가 생긴다면 환자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은 잘못이 됩니다.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설명하고 환자가 이해하고 동의했다는 표시를 할 것을 법은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따르지 않았을 때 소송 등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죠.

 

가족을 포함한 보호자, 이 경우엔 딸이 설명을 충분히 들었고 동의했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해선 안 됩니다. 가능한 경우는 성년후견 제도 하 딸이 어머니의 후견인으로 인정을 받았을 때만 해당합니다. 후견인은 도움이 필요한 성인의 재산관리 및 신상보호에서 후견 업무를 수행하는데, 이때 딸이 원한다고 그냥 후견인이 되는 것은 아니고 가정법원의 결정을 받아야 합니다. 딸이 후견인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데 딸의 동의만으로 치료를 진행했다가 잘못되는 경우, 설명의무 위반을 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하느냐고요? 우리는 늘상 접하기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치과 치료를 포함하여 의료 행위는 환자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이면서도 침습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이전부터 환자가 직접 명확한 의사 표명을 한 경우에만 그 치료 행위의 수행에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발전시켜 왔어요.

 

물론,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이슈가 있지요. 모든 사람들이 명확히 의사 표명을 할 수 없다는 문제, 예컨대 위 사례의 김 할머니나, 소아치과 환경에서의 소아·청소년 환자, 장애인치과 환경에서 발달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의 경우가 그럴 겁니다. 이들을 의료윤리학은 “취약한 환자”로 분류하고, 성인에서의 충분한 설명 후 동의 절차에 추가적인 고려가 필요함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예컨대 소아 환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으나 청소년 환자의 경우엔 비록 법적 행위능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치료와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인, 특히 알츠하이머병 등으로 인지 능력에 제한이 생기신 경우에도 이런 고려는 마찬가지로 필요합니다. 더구나, 노인은 일단 성인의 범주로 들어가기에, 노인 환자는 일단 동의를 받아야 하는 대상에 기본적으로 속하지요. 그러나 노인 환자가 의사결정 능력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으로는 이런 환자분들에 대한 경험도, 이해도 높아져서 우리 사회나 치과의 인식도 달라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선생님은 제도의 형태든 사회문화적 형태는 의사결정 지원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으고 계셔요. 의사결정 지원이란, 이런 환자분들의 자기결정 수준이 다양하므로, 각자의 수준에 맞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지원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가 천명한 것처럼, 의사능력이 제한된 자라고 하여 그의 권리 및 행위능력을 박탈해선 안 되고, 오히려 의사결정을 잘 내릴 수 있도록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원에는 대상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쉬운 설명에서부터 시작하여, 간략화된 방식으로 선택지를 제공하거나 의사결정 지원 도구를 활용하여 사람들이 쉽고 자신의 삶에 맞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 돌봄 제공자와 함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대상자가 최대한의 결정권을 발휘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하는 것까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 사회는 여기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겐 의사결정 지원의 방식들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못하고, 당장 치과에서 노인 환자들에게 쉬운 설명을 제공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나 설명 책자 같은 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지요. 앞으로 이런 내용들을 준비해야겠지만, 그 이전 단계에서 치과의사 개인의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일 거예요. 어떻게 설명할지, 어떤 동의를 받을지 검토하셔서 우리 치과만의 방식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바쁜 진료 시간에 이런 것까지 어떻게 챙기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노인 환자를 향한 쉽고 충분한 설명, 그리고 배려하는 동의의 방식을 제공하는 것이 가깝게는 우리 치과를 지킬 것이고, 더 나아가선 조금 더 친절한 치과 환경을 만들 거예요. 장기적으론 제도적, 체계적으로 지원 방식을 확립해야겠지요.

 

힘든 부분도 있겠지만, 점차 다가오고 있는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은 이쪽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들의 관심과 도움을 청하며 오늘의 글은 여기에서 줄이고자 합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