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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마을 톰볼라

스펙트럼

“이거 하나만 시켜도 되나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가격이 저렴한 에피타이저 중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잘 몰랐던, 대학 시절의 제가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마음에 정한 레스토랑을 방문하여 사장님 앞에서, 에피타이저만 시켜도 되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자유로워 보이는, 조금 긴 머리에 백발이 섞인, 예술적 감성과 철학적 지성을 겸비해 보이는 사장님은 당연히 그래도 된다며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여주셨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고급진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깔끔하게 정돈된 자리를 한 시간 넘게 차지하고 있을 것인데 에피타이저만 시켜도 될 리가 없었죠. 아마도, 당시의 저에게는 그런 암묵적인 룰에 대한 감각이 매우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본 일정 중에는 에피타이저와 메인을 적당히 시켜서 구색을 잘 맞추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사장님의 편안한 리드 덕분에 암묵적인 룰을 떠나 자리에 맞는 식사를 구성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장님의 온화한 미소가 그냥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저는 지금도 가족들을 데리고 서래마을 톰볼라에 가서 그 미소를 떠올리면서 머릿수보다 더 많은 요리를 시켜서 식사를 하곤 합니다.

 

가끔, 환자분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임플란트는 딴 데 가서 해도 되나요?” 저희도 임플란트 시술을 하는데 잇몸치료, 충치치료, 근관치료, 다 저희 치과에서 잘 받으시다가 임플란트 치료만 딴 데가서 받으셔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럴 때 서래마을 톰볼라 사장님의 온화한 미소가 떠오르곤 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 사장님처럼, 당연히 그래도 된다며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여드리곤 합니다.

 

강제적 건강보험으로 인하여 가격 정의가 무너진 의료현장은 환자와 의사에게 암묵적인 룰에 대한 감각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건강보험 진료로 열심히 덕을 쌓은 원장은 나중에 환자가 비보험 진료를 받음으로써 이 노력을 보상해줄 것이라 믿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암묵적인 룰이 발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발생된 암묵적인 룰… 의사에게 있어 가격 결정권이 박탈되다시피 한 마당에 그 룰에 대한 감각은 누가 환자에게 전해주어야 옳은 지, 가격 정의가 무너진 곳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 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임플란트는 딴 데 가서 해도 되냐고 저에게 물으신 환자 중에 저희 치과를 떠나 다른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하신 환자분은 없으십니다. 그래서 임플란트 때문에 저희 치과를 떠나신 분도 없고, 타 치과의 임플란트 관리 소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겪으신 환자분도 없습니다.

 

의료업을 15년 넘게 하면서 피부로 느낀 부조리가 많았습니다. 제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다른 업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항상 견디고 환자분들의 오해와 상한 마음을 풀어드려가며 진료를 해왔습니다. 이제는 진료실 밖에서도 모종의 노력이 시도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의료에 대한 시각에 변화가 필요해 보이는 요즘입니다. 의료 수요자, 의료 공급자 간 의료에 대한 견해차를 조율하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언제쯤 대화가 시작될까요. 날씨라도 좀 쿨해져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