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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초년생의 김장

수필

초겨울 날씨답지 않게 따뜻한 휴일, 한낮의 햇빛은 야외활동을 하기에 너무도 행복함을 느끼게 하였다. 70세를 바라보지만 아직도 주부 초년생인 내가 김장을 하려고 하니, 초등학교 동창생 친구가 같이 도와 주겠다했다. 이웃 섬기기에 몸을 아끼지 않는 친구는 남을 위한 봉사가 몸에 저절로 배인 듯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어려운 이웃에게 된장, 고추장, 김장을 상상 못 할 정도로 많이 만들어 나눠 준다 하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전원생활로 오래전부터 텃밭 농사를 지어왔지만, 올해도 배추는 김장을 하기엔 크기가 작아서 절인 배추를 주문하였다. 무는 우리 집 텃밭에서 제법 크게 자라 그것을 사용하기로 하여 아침부터 김장 준비를 하였다. 제일 먼저 김칫속에 넣을 무채를 썰었다. 몸에 익혀지지 않던 일이라 무 썰기도 힘이 들었다. 한낮이 되니 친구가 왔다. 물론 우리 집 김장 준비보다 더 많이 김치 속을 준비하여왔다.

 

이삼백 포기씩 김장을 하던 친구의 손놀림에 20 포기 김장은 소꿉장난처럼 순식간에 끝이 났다. 김장의 끝은 둘러앉아 먹는 식사 시간이듯 찹쌀밥에 굴을 섞은 김치 속과 절인 배추, 대구탕, 돼지고기 바비큐로 환상의 식사 시간이 되었다. 초등학교 동창생답게 우린 어린아이 마냥 즐겁게 떠들다 이웃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따뜻한 카페 라테와 떨어지는 초겨울의 빗방울 소리, 낙엽 향기와 더불어 웃음꽃을 피웠다.

 

어릴 적 김장철이 생각났다. 어렵게 살던 때라 초겨울의 김장은 한 가정의 큰 행사였었다. 어렸던 나의 역할은 눈발이 날리는 유난히 차가운 겨울 날씨에 손끝이 시려도 이백 포기 이상의 배추를 반으로 자르는 역할이었다. 계속 일을 하여도 몇백 포기의 배추 더미는 줄지가 않았다. 그래도 즐거운 것은 김장 후에 맛있는 점심 식사가 기다려지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께서 해 주시는 점심식사 역시 따뜻한 찹쌀밥에 동태찌개와 김장에 버무려진 굴 쌈이 일미였다. 이제는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옛날 같지 않으셔서 난생처음으로 직접 김장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당신의 역할이 다 해서인지 서운해하시는 어머님의 표정이 옛날의 추억과 함께 세월의 무상 함을 느끼게 하였다.

 

쉽게 주문해서 사 먹을 수 있는 지금에 비하면 김장이란 삶의 의미와 기쁨으로 다가오는 큰 행사인 듯했다. 쉽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많겠지만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기쁨이 나에게는 더 큰 행사로 여겨졌다. 내년에는 조금 더 맛있는 김장을 하여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어먹어야 겠다. 내년 겨울이 기다려진다.

 

 

 

권택견 운영위원

 

-연세대학교 치과대학ㆍ대학원 졸업

-열린치과봉사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