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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주의(stoicism)의 가르침과 치과의사의 삶” -개원의 15년차 박상준

릴레이 수필 제2622번째

치과의사로서 살다 보면 수많은 난관에 봉착한다. 고약한 진상 환자가 등장하여 터무니없는 이유로 날마다 치과에 드러눕는 경우도 있고, 손버릇 나쁜 데스크 직원을 만나 상당한 금액을 횡령당하는 경우도 있으며, 얌체 같은 건물주를 만나 잘 꾸려 놓은 치과를 통째로 날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안정적인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는, 동일한 좌절의 상황 속에서도 최소의 체감을 느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굳건한 정신을 갖추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한데, 바로 이 부분에 있어 해결책을 조언하는 철학의 사조로서 나는 주저 없이 금욕주의를 꼽는다.

 

스토이시즘(금욕주의)의 거두 세네카는 거대한 재앙 또는 비극 앞의 인간의 운명을, 예측 불가능한 경로로 주행 중인 마차에 묶여 있는 개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개는 목줄이 허용하는 만큼의 자유를 자의에 의해 누린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 우연히도 개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마차의 주행방향과 같았을 경우, 개는 무한한 효능감을 느끼며,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확신이 들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마차의 움직임에 귀속되는 것은 묶여 있는 개의 숙명이다. 마차의 방향이 개의 의지와 달라지는 순간 개는 마차에 저항하겠지만, 저항하고자 할수록 개의 좌절만 늘어날 뿐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인식하는 인간의 좌절도 마차에 묶인 개의 좌절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이 오롯이 자유의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믿고 싶어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가 원치 않았던 조건들, 태어난 환경이라든지, 갑작스러운 천재지변, 그가 속한 시대상황, 예기치 않았던 사회적인 혼란 등에 의해 훨씬 큰 부분을 좌우당하고 있다. 그가 한없이 자유롭다고 믿고 능력을 과신하게 되는 이유는, 그 큰 숙명의 틈바구니 속에서 적당히 그 흐름에 반하지 않을 때 느끼게 되는 잠시 동안의 자유로움을, 앞으로도 계속될 나에게 주어진 행복한 권리라고 믿어버리는 착각 때문이다. 

 

여기서 스토아 철학자들은 그 착각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 착각은 그 순간의 달콤함을 선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결국 숙명을 확인하게 될 때 느끼게 되는 좌절의 크기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자유롭다는 착각이 크면 클수록, 생각지도 않았던 거대한 숙명의 벽에 부딪쳤을 때의 좌절은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금욕주의 철학자들은, 어차피 숙명의 끈에 묶인 인간이 그 굴레 속에서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내 숙명의 틀 속에서 그 순간순간의 최선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 숙명의 완수와 함께 주어지는 행복을 충분히 누릴 권리가 있다. 다만, 숙명의 큰 틀은 그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그 거대한 틀이 내게 시련을 선사하더라도, 그것에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이 마차에 묶여 있는 개와 다른 점은 명백하다. 자신이 목줄로 묶여 있는지, 마차는 어디로 어떻게 달려가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개와는 달리, 인간은 묶여 있는 스스로의 처지를 인지할 수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가게 될 것인지를 이성의 힘으로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숙명과 나의 희망이 타협할 수 없을 만큼 다른 방향을 향한다면, 능동적으로 스스로의 관점을 수정하여 좌절없이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다. 나약한 개인에게 그 숙명을 바꿔버릴 힘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 숙명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자유는 명백히 주어져 있으니, 현명한 자라면 숙명에 좌절하고 분노하느라고 자신의 힘을 소진하기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냉정히 파악하고 받아들인 뒤,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집중하는 지혜를 발휘할 것이다.

 

치과의사로서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난관들은 과연 어느 수준까지가 적당할까? 금욕주의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그 범위는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서두에서 소개했던 고약한 진상 환자가 등장하여 터무니없는 이유로 날마다 치과에 드러눕는 경우나 손버릇 나쁜 데스크 직원을 만나 상당한 금액을 횡령당하는 경우, 혹은 얌체 같은 건물주를 만나 잘 꾸려 놓은 치과를 통째로 날리는 경우 모두가 치과원장으로 일하다 보면 맞이할 수도 있는 일 정도로 미리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좋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닥쳤냐면서 한탄하고 좌절하느라 아까운 힘을 쏟고 탈진하느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을 뿐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고, 자발로 치과개원의의 길을 선택했다면 기꺼이 이런 일이 생길 개연성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책임을 분명히 인지한 채, 의연한 마음으로 현실적인 대응에 힘을 써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연약한 정신의 동료분 누군가는, 악성 진상에게 시달린 뒤 치과의사가 된 걸 후회하며, 모든 걸 내려놓고 잠적해버릴까, 아님 좀 더 극단적으로, 확 그냥 진상 앞에서 분신이라도 해버릴까 고뇌하며 별별 비이성적 망상들로 다친 마음을 달래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병적 상태에서 벗어나서 눈앞의 현실을 명료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치과의사의 긴 인생에서 누구나 경험해볼 수 있는 일이 벌어졌을 뿐이다. 의연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만 집중하다보면, 다친 마음도 어느 새 모두 치유되어 있을 것이다. 그에게 세네카의 ‘인생론-인생의 짧음과 마음의 평정에 대하여’를 강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