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한지 몇 주 안되었을 때였다. 지금도 선배님들에 비해 경험이 일천하지만 그때는 더 젊고 의욕이 더 앞섰던 시기였다. 치과에 처음 온 환자분이 잇몸이 붓고 치아가 불편한 것 같다면서 치료해 달라고 했다. 치과의사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환자가 말하는 불편감은 비슷하더라도 실제 문제가 있는 것이 치성인지 아닌지, 원인이 치아인지 치주조직인지 변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검사가 필요하다. 특히 우리 치과 영역에 있어서는 방사선 사진촬영이 가장 강력하고 신뢰할 만한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험급여가 되니 저렴하기까지 하다. 나는 환자에게 설명하고 치근단 방사선 사진을 촬영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환자분이 방사능은 몸에 해로운데 왜 자꾸 엑스레이를 찍어대냐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아픈데 약이나 줄 것이지 돈 많이 받으려고 쓸데없는 검사를 되풀이한다고 원망했다. 내 입장에서는 말이 되지 않았다. 방금 환자를 처음 보았는데 어떻게 ‘엑스레이를 찍어댔’을 것이며, 검사도 없이 어떻게 진단을 하고 무작정 처방전을 발급할 것인가. 경험이 조금 쌓인 지금이라면 어르신이 나와 초면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었거나, 이미 다른 치과를 거쳐 오면서 다른 곳에서 찍은 것을 혼동했으려니 생각할 것 같다. 그때는 의욕이 넘칠 때라, 환자 눈높이에서 설명하려 애를 썼다.
방사능(방사성)물질 오염과 방사선은 다른 것이다. 의료용 방사선은 지속적으로 관리되는 기기에 의해 필요한 양만 사용되어 안전하다. 특히 치과 진단용방사선 장치는 치료용방사선 장치에 비해서 조사량이 매우 낮고 방사선에 노출되는 부위가 매우 적다. 최근에는 디지털화되어 더 낮은 선량이 사용된다. 평소 생활할 때도 우리는 우주선이나 토양유래의 자연방사선에 극소량씩 노출되고 있으니 치과의 진단방사선량은 일상생활을 엿새 정도 하며 쬐는 자연방사선 양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엑스레이를 찍어도 엿새 정도 더 사신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뚱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던 환자는 드디어 이해하기 쉬운 대목을 포착하고, “내 나이에서 엿새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느냐” 라고 소리쳤다. 눈높이 교육에는 성공하였지만, 결국 이해와 설득에는 실패하였다.
질병관리청에서 최근 ‘2023년 국민 의료방사선 이용 현황’을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작년 한 해 동안 전 국민의 의료방사선 검사건수는 총 3억 9,800만여 건으로, 국민 1인당 약 7.7건이며, 전 국민의 피폭선량은 총 162,106man·Sv(맨·시버트)로, 국민 1인당 3.13mSv(밀리시버트)이었다. 이는 전 국민이 이용한 의료방사선 검사건수와 의료방사선 검사로 인한 피폭선량을 조사한 결과이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으로부터 의료방사선 검사건수를 수집하고, 질병관리청이 정책연구를 통해 마련한 의료방사선 검사종류별 피폭선량을 적용하였다고 밝혔다.
관련 치의신보 기사에서는, 2023년 국민의 의료방사선 이용이 전년인 2022년 대비 검사건수는 13%, 피폭선량은 14.3% 증가되었고, 최근 4년간 검사건수는 평균 9%, 피폭선량은 평균 8.3% 수준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치과 방사선 촬영의 피폭선량이 타 검사 분야 촬영에 비해 월등히 낮다고 지적하였다.
반면 다른 인터넷 매체에서는 ‘스케일링만 할건데 “CT 찍으실게요”…툭하면 노출, 방사선 괜찮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우리협회 홍보팀에서 발 빠르게 정정보도를 요청하였는지 기사 제목은 이내 바뀌었지만, 오해를 유도하는 것이 불쾌하였다. 해당 기사에서는 한국인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의료방사선 검사를 많이 받는 편이라 의료기기를 통한 방사선 피폭량의 적정선을 언급하며 통상 건강검진에서는 2-3mSv정도 노출될 수 있고, 한 해 2~3번 정도의 의료방사선 검사는 안전하다고 서술하였다. 엑스레이 검사나 CT 촬영을 통해 의료진이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필요시 검사를 기피할 필요는 없으나, 의료방사선 역시 과다 피폭되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질병청은 의료방사선의 안정성을 고려해 신중히 검사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는 내용으로 마무리 지었다.
치과방사선촬영의 피복선량은 0.02mSV으로 복부CT(6.8mSv)나 뇌혈관조영술CT(5.2mSv)은 물론 성인 여성들이 매년 받는 유방암검진(0.38mSv)에 비교하여서도 현저히 낮다. 간단한 산수로 치과방사선 촬영을 10회 받더라도 유방암 검진촬영 1회분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안전한 검사이다.
그러나 통계자료에 0.02mSv으로 보고된 것을 기사내 도표에서 굳이 0.03이하라고 수치를 임의적으로 상향조정하고,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위해 CT를 찍지 않음에도 이를 호도하는 제목으로 기사를 낸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실제 질병관리청 보도자료에서는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이 “인구 고령화,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국민의 의료방사선 검사 이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나, ‘의료영상진단 정당성 지침’ 및 영상검사 ‘진단참고수준’을 제공함으로써 의료방사선이 안전하고 적정하게 사용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을 뿐으로 위 기사의 뉘앙스와는 사뭇 다르다.
오늘날 매체 환경이 인터넷 기반으로 바뀌면서 매체들이 한 번이라도 더 ‘클릭’을 받기 위한 노력하는 관행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특히나 구독자가 줄어들고 광고수입이 매체의 생존을 가르는 현실에서 고육지책이리라 짐작도 된다. 오히려 담박하게 정론직필하기 위해 노력하는 치의신보 기자들과 편집부에 고맙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다만, 의료·바이오 담당기자의 이해력이 이러할진대 일반인들이 치과 방사선에 대한 오해가 얼마나 더 심하겠는가. 고의로 유도된 오해로 우리 국민이 얼마나 쉽게 피해를 입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하다.
치과의사와 같이 방사선장치를 다루는 전문가는 이미 학교에서 방사선학과 진단방사선장치의 운용을 배우고 국가고시를 치른다. 진단용방사선 장치의 안전관리책임자로 선임된 다음에는 안전관리책임자 선임교육도 이수하여야 하는데, 최근 선임교육 이후로 3년에 한 번씩 보수교육을 받을 것을 의무화하였다. 다행히 치과의사의 방사선관련 교육은 보다 실효있고 세분화된 교육을 위해 대한영상치의학회로 이관되었고, 너무 잦은 보수교육 주기도 조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현업에서 체화된 업무를 교육을 위한 교육을 하는 것보다는 보건당국이 보다 현실적인 필요에 역량을 기울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방사선 관련 내용을 보도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과 관련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실무자, 방사선과 방사능의 구별이 어렵고 무분별한 방사선 괴담과 공포 마케팅에 희생되고 있는 일반 국민에게 방사선의 실재와 안전성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더 시급한 것 같다. 그리고 어떤 문명의 이기라도 사용자 교육이 부족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목적을 떠나 오남용 되었을 경우가 문제이다. 치과의사가 진단을 위해 방사선 사진을 찍는 행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환자가 자기 마음에 드는 말을 해주는 곳을 찾아 몇 번이고 병원을 쇼핑하며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이 도리어 환자의 건강이나 재정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레이 오브 라이트(Ray of light)는 우리말로 광선(光線)이라는 뜻이다. 은유적으로 한줄기 빛이란 희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올바른 이해의 저변 위에 과학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운용으로 국민에게 희망의 빛줄기로 자리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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