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3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甲子園) 구장. 제106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10회 연장전 끝에 승리한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다.
TV 화면에 일장기만 살짝 비쳐도 경기를 일으키는 소아병 환자 보유국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얘기다. 이 학교는 1947년 재일동포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설립한 교토조선중이 모태로서, 교가 가사는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이라고 한다. 재정난과 학생 수 급감으로 일본학교로 전환하여, 이제 재학생 159명의 70%, 야구부는 전원 일본인인데, 많은 학생이 한국어 능력시험에 응시, 합격한단다. 과거에 일본사람이 작다 하여 왜(倭)라고 낮춰 부르기도 했지만, 한일 두 나라 중 어느 쪽에 소인배가 득실대는지는 조금만 들여다보면 보인다. 미우나 고우나 배울 건 배우자. 여름 고시엔은 3700여 고교 야구부 중 전국 47개 광역자치단체별로 예선을 거친 49개 고교가 나와 경기를 치르는데, 투수에게 변화구를 던지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으로 안다. 한창 성장하고 있는 근육과 관절에 절대로 무리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튀어나온 윗턱 치아가 묘하게 인상적이던 프레디 머큐리는, 전설적인 록 밴드 ‘퀸’의 리드보컬이자 오페라 광(狂)으로서, 13세 연상인 몽세라 카바예(Montserrat Caballe: 1933-2018)의 열렬한 팬이었다. 치의신보에 칼럼 보헤미안 랩소디로 소개한 바 있다(2018). 카바예는 1987년 고향 바르셀로나에서 프레디의 노래를 듣고 친구가 되어 5년 뒤 올림픽 축가를 함께 부르기로 약속을 했으나, 프레디가 작곡 작사한 ‘Barcelona’는 1991년 그의 에이즈 합병증 사망으로 무산되고, 바르셀로나 출신 호세 카레라스와 사라 브라이트만의 두엣 ‘영원한 친구: Amigos para Siempre’로 대체된다. 당시 바르셀로나 LD를 어렵게 직구하여 감상한 것은 아름다운 추억이다.
카바예가 14세에 리세우 음악원에 들어가니, 스승인 케메니가 노래는 가르치지 않고 4개월간 운동장 달리기만 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단련된 폐활량과 기초 체력 덕분에 평생 흔들리지 않는 고음과 긴 호흡을 유지, 칼라스의 벨칸토 오페라를 모두 계승 소화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벨칸토는 18세기에 대극장의 뒷좌석까지 잘 전달되도록 이탈리아에서 개발된, 호흡이 길고 잔잔하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창법이다. 어렸을 적 너무 가난하여 셋집에서 쫓겨나 다리 밑에서 잘 때 아버지가 해준 말, “셋방을 나오니까 저렇게 예쁜 별들을 보며 잠들 수 있잖니?”를 추억하는 아빠 사랑. 혹독한 체력훈련은 학교폭력으로, 어린 시절 노숙을 무능한 아빠에 대한 원망으로 돌리지 않는 그녀의 순수함이, 세기의 벨칸토로 이름을 남기게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필자는 과학기술인의 은퇴시설인 사이언스 빌리지(사빌)에 오디오시스템과 판을 기증한 죄(?)로 음악감상모임 ‘해피 LP’ 회장을 맡고 있지만, 실제로 음원준비로부터 해설까지 모두 부회장 이병선 후배가 진행한다. 지난 5월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서 명예음악박사 학위를 받았다(California Arts University). 평생을 전자통신 연구에 바친 엔지니어의 여기(餘技)로서, 보기 드문 경사를 축하한다. 감상회 후반은 세계적인 성악가의 시간인데, 얼마 전 20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중 한 사람 프레니(Mirella Freni: 1935-2020)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1930년대 태어난 걸출한 성악가들이 많다.
사주팔자가 미신이 아니라는 증거일까? 이탈리아 모데나의 가난한 집안 출신 프레니는 9세에 ENAL 콩쿠르에서 나비부인의 ‘어떤 개인 날’을 열창했는데, 심사위원 베냐미노 질리의, “변성기가 끝나는 16세 이전에는 노래를 자제하라”라는 충고를 지켜, 20세에 카르멘의 미카엘라 역으로 데뷔, 광범위한 레퍼토리로 명성을 떨쳤다.
파바로티와 동갑내기로, 두 어머니는 같은 담배공장에서 일했을 뿐더러, 두 사람은 한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한다. 1974년에 카라얀의 지휘로 파바로티와 함께 녹음한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최고의 명반으로 남아있다.
아침에 프런트에 배달되는 신문 20여 부 중에 딱 하나를 빼면 몽땅 조선일보다.
우리가 믿는 국가 정체성 지킴이에 대한 감사와 신뢰의 표현이다. 덧붙여 어려운 팬데믹을 이기고 국민의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흥을 돋아준 기여도에 대하여, TV조선예능 ‘미스터트롯’에 온 국민이 박수를 보내는지도 모른다. 다만 경연에 ‘유소년 부’를 추가한 일은 유감이었다. 성인은 몰라도 성대(聲帶)가 성장 중인 아이에게 ‘꺾기 강요’는 ‘아동학대요 장래 그르치기’ 아닌가?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지만,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어른들의 욕심 같아 눈에 거슬린다.
엄격한 절제와 규율의 전통으로 고시엔의 권위가 서고, 그 결과로 메이저리그의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불세출의 기록을 써가고 있지 않은가? 다음 세대의 교육은 어른답게, 훈련은 엄혹하되 건강한 장래를 배려하는, 장기적인 시선으로 접근하자.
* 딱 한 부는 예비역 대령에게 배달되는 ‘국방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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