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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튜드’를 적용한 치매 환자 치과 진료

릴레이 수필 제2625번째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한 명이 치매일 정도로, 주변에 수많은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이 있습니다. 우리 치과에 당장이라도 치매 환자분이 방문하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오랜 기간 우리 치과를 잘 다니셨던 어르신이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말씀하시거나 행동하셔서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치매 환자에게 치과 진료를 하는 것은 많은 치과의사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분명히 아프신 것 같은데, 무조건 괜찮다고 하십니다. 소리를 버럭 지르고 화를 내면서 밖으로 나가버리시기도 합니다. 침을 뱉거나 때리기도 하시죠. 치과에 오신 분이 입을 아예 벌리지도 않고 버티십니다. 억지로 벌려보려고 했다가 손가락이라도 깨물리는 날에는 정말 정신이 혼미해지고, 치매 환자 다시는 못 보겠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치매 환자가 보이는 이러한 반응은 사실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환자가 낯선 환경과 진료 과정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입을 벌리지 않고 손을 내젓는 등의 행동이 의료진이 보기에는 모두 ‘거부’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불안을 해결하고 환자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휴머니튜드(Humanitude)’라는 케어 기법을 치과 진료에 접목할 수 있습니다.

 

휴머니튜드는 1970년대 프랑스의 운동 치료사이자 철학자인 이브 지네스터(Yves Gineste)와 로젯 마레스코티(Rosette Marescotti)에 의해 개발된 돌봄 철학입니다. 이들은 노인과 치매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환자의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감정적, 심리적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휴머니튜드를 고안했습니다.

 

휴머니튜드의 주된 목표는 환자의 불안과 두려움을 최소화하고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휴머니튜드는 시선(Eye contact), 언어(Verbal communication), 접촉(Touch), 그리고 자세와 움직임(Posture and movement)의 네 가지 주요 원칙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들은 각각 환자의 감정과 신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를 치과 진료에 적용할 경우 치매 환자가 보다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1. 시선 맞추기(eye contact) - 시선은 사람 간의 소통에서 가장 강력한 비언어적 수단 중 하나입니다. 치매 환자들은 눈을 맞추는 것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을 존중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치과 의료진은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환자와 눈을 맞추고 부드러운 시선을 유지함으로써 환자가 신뢰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눈을 맞춘 상태에서 천천히 다가가면, 갑작스러운 접근으로 인한 공포감을 줄일 수 있습니다.

 

2. 언어적 소통(Verbal communication) - 언어적 소통은 환자가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안심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치매 환자들은 복잡한 설명이나 장황한 대화에 혼란을 느낄 수 있으므로, 간결하고 명확한 표현을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긍정적이고 차분한 어조를 사용하여 환자에게 ‘당신이 안전하고 존중받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 ○○님, 제가 오늘 어르신 이를 잠깐 살펴볼게요. 무섭지 않도록 천천히 할게요”와 같은 말을 차분히 건네면, 환자가 이해하기 쉽고 진료 과정에서 느낄 불안을 줄일 수 있습니다. 

 

3. 신체 접촉(Touch) - 신체 접촉은 휴머니튜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환자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사람은 누군가 자신의 얼굴과 입을 만지려고 하면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거나 방어하게 됩니다. 그래서 특히 치과 진료와 같이 얼굴과 입에 대한 접촉이 불가피한 경우, 먼저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 후에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바로 입이나 얼굴을 만지기보다는, 손이나 어깨 등을 살짝 터치하면서 점차 얼굴 쪽으로 가까이 만져 나가는 것이 환자의 공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와 같은 신체 접촉을 통해 환자에게 따뜻함과 안정을 전달할 수 있으며, 이는 치매 환자가 치료에 더 잘 협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4. 자세와 움직임(Posture and movement) - 치과 진료 중에는 환자와의 신체적 거리가 매우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이때 환자가 느낄 수 있는 심리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갑작스럽게 움직이거나 환자가 불안해할 만한 자세로 다가가는 것을 피하고, 가능한 한 천천히 접근하여 환자가 공간적 압박을 덜 느끼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또한 진료 중에도 환자가 편안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의료진이 환자의 움직임을 존중하고 협조를 구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치매 환자의 치과 치료에는 기술적인 문제뿐 아니라, 환자의 감정적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휴머니튜드를 치과 진료에 적용하는 것은 단순한 치료 과정을 넘어, 환자의 감정과 경험을 존중하는 통합적 접근을 의미합니다. 휴머니튜드의 원칙을 바탕으로 환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두려움을 공감하며 대응한다면, 치매 환자의 치과 치료 거부를 완화하고 성공적인 치료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휴머니튜드’를 실천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